[데스크라인]기술유출방지 논란의 해법

국민들에게 한번 물어보면 어떨까. 기술유출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겠습니까? 백이면 백 다 대답은 ‘안된다’일 것이다.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뼈빠지게 일해서 이만큼 만들어 놓았다. 이제 좀 배불리 먹어보자고 하는데 도둑들이 극성이다. 집안 식구들마저 틈만 나면 곳간을 퍼내가려 한다. 밤손님과 결탁을 하기도 예사다. 이대로 가면 애써 비축해 놓은 곳간이 텅 빌 지도 모른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보릿고개 시절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피땀어린 곳간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왠 난리야? 기업들도 과학기술계도 쌍심지를 켜고 반대한다. 기술유출을 가장 걱정해야할 주체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다 찬성하는 일인데 대체 어찌된 일인가. 자기밖에 모르는 부류들인가. 나라도, 국민도 안중에 없다는 것인가. 미국이 항만운영권을 아랍계에 넘기는 걸 막아낸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부실 석유회사가 중국에 팔리지 못하게 무산시킨게 누군가. 미국 정부가, 의회가, 국민들이 아닌가. 시장과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고 떠들어온 바로 그 미국이 아닌가 말이다. 이해가 안된다.

 지금쯤 기술유출방지법에 관계된 정부 인사들이 가슴 속에 품을 만한 생각이고 푸념일 것이다.

 기술유출방지법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다. 새해 3월부터 기술유출방지법이 시행되려면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십중팔구 시행령이 나오면 또 다시 시끄러워 질 것이다. 재계는 헌법소원까지 들먹이고 있다. 과학기술계도 뚫어져라 조항 하나하나마다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그렇다고 국회까지 통과한 멀쩡한 법을 그냥 방치해두기도 옹색하다. 억지로 밀어붙여서도 곤란하다. 반발이 거세다보면 산업기술보호위원회 구성도 어렵게 될 것이다. 생색은 커녕 욕만 먹을 자리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법은 있으되 무용지물이다. 국회까지 통과한 법을 폐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유출도 가능한 막고 반발도 최소한으로 줄일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해결의 열쇠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시행령에 달렸다. 기술유출방지법이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과 안된다는 주장은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속에 해결책이 숨어있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반발의 원천은 기술유출방지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의 차이에 반대할 뿐이다.

 기술유출방지법은 방지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규제 문제를 간과했다. 핵심기술이 어떻게 규정되느냐에 따라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역할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무소불위일 수도 있다. 마치 그 옛날 외자 도입과 반출 때마다 겪어야했던 규제를 연상케한다. 기업이란게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불편해지면 활동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술유출방지법이 아니라 기업활동방지법이 될 법도 하다. 정부는 위원회 심의의 근거가 되는 핵심기술의 범위를 최소화하겠다지만 쉬이 믿기지 않는다.

 문제 해결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지금이라도 업계와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을 모아서 핵심기술의 범위를 논하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점을 찾아라. 기업들 스스로 이것만큼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되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만들어라. 과학기술계가 적어도 이런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수용할 수 있는 잣대를 만들어라.

 이 정도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위원회가 과다하게 규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필요 없어진다. 위원회의 역할은 첨예한 문제만을 심의하도록 최소화하는게 좋다. 때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모아 핵심기술의 범위를 재조정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etn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