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방융합의 `꿈`

새해 첫날, 재미 삼아 토정비결 운세를 보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정적을 깬다. 다소 느리다는 느낌을 받았던 발라드음이 유난히 빠르게 들린다. 정통부와 방송위원회를 함께 출입하는 취재기자의 목소리도 숨가쁜 리듬을 탄다.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요. 국무조정실에서 긴급 브리핑이 있답니다.”

첫 날부터 무슨 일인가 했더니 통신·방송 융합기구개편에 대한 중대 발표가 있을거란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아 편집국장에게 판갈이가 불가피할 것 같다는 긴급보고를 냈다. 대충 차려입고 회사로 향하는 차 속에서 곰곰히 생각해 본다.

‘긴급’이라면 발표 내용은 두가지 가운데 하나일 터다. 우선 정통부와 방송위의 1대1 통합을 골자로 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안이 전면 백지화되는 경우다. 통합 당사자인 방송위 측이 방송의 독립성 훼손과 직원들의 신분보장 문제로 반대를 거듭해왔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없지 않다. 방통위 위원 임명권이 모두 대통령에 있다며 반발하는 야당들도 만만치 않다. 대선을 코앞에 둔 야당으로선 굳이 정부 스케줄에 따를 필요가 없다.

그뿐인가. 산자부와 문화부는 (정보)통신과 콘텐츠 진흥이 각각 자신들의 소관이어야 한다는 내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간 이해가 엇갈려 기구개편 논의 자체가 사분오열 지경인 것다. 이쯤되면 방통위 설립 논의는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계획은 헌정사상 가장 인기가 없다는 참여정부의 대선공약이 아니던가.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백지화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설립 시기를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내용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바닥 인기라지만 벽두부터 백지화나 연기를 발표할 전할 정부는 없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새해가 밝기 전에 발표했어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터다. 정치권의 반대가 거세고 부처간 이해가 엇갈린들, 통방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보다 후진국들도 도입한 IPTV서비스를 막고 있는 ‘IT강국’의 체면은 말이 아니다. 통방융합을 투자의 선순환 고리로 활용하려는 산업계의 발목이 붙잡힌 지도 벌써 몇년째다. 이건 야당들도 공히 인정하는 바다.

회사 앞에 주차를 마치고 핸드브레이크를 당기는데 다시 벨소리가 울린다. 국무조정실 도착했을 시간의 취재기자 목소리다.

“정부, 여야가 완전 합의했답니다. 1월중 통합기구설치법안 국회 통과시키고 4월에 출범시키기로 했습니다.”

“!…”

정부와 여야 대표가 전날 저녁부터 벌인 막후협상이 방금전 타결됐다는 것이다. 통방융합 기구개편과 법제화가 새해 최고의 국정과제라는 데도 합의했단다. 기자의 목소리가 계속 떨린다. “상임위원 5명 모두 국회 동의를 받기로 했고 방송위,산자부,문화부 간의 직무 분장도 일단 기구 출범후 논의하기로 했구요.”

“!…”

도대체 어안이 벙벙해 수습이 안된다. 유리문을 밀치며 사무실에 들어서려는데 발을 헛디뎠을까, 아니면 손에서 휴대폰을 놓쳤을까. 까마득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에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다. 토정비결의 깨알같은 글괘를 읽다가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꿈은 염원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특권이라 했던가. 그 내용이 하도 생생해 몸둘바를 모르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글괘 한줄이 있다.

‘먼저 곤하고 나중에 길하니, 지난 일이 구름만 같다(先困後吉 往事如雲)’. 모두의 염원인 통방융합 논의가 새해에는 이런 글괘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