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10여일간 중국에 체류하며 중국 기자와 정부 관리들을 만난 적이 있다. 며칠 동안 함께 생활하며 친분이 쌓이자 이들은 처음에는 ‘한류열풍’을 주제로 얘기하며 “중국은 한국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몇 순배의 술잔이 돌자 “앞으로 50년 후에는 한반도는 대중화권에 들어올 것”이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동북공정’도 이런 자신감에서 나온 억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인만큼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 있다. 바로 인도다. 인도인 역시 아리안족의 후예답게 오늘날에도 철저한 계급사회를 유지하면서 ‘에스노센트리즘(자민족 중심주의)’을 고수하고 있다. 공교롭게 우리는 지금 이 두 나라와 세계 IT시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IT시장의 성패가 민족 자존을 가름하는 셈이다.
인도와 중국은 2003년 이후 각각 9%와 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 경제의 거인으로 급부상 중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의 경제 규모는 2008년에는 유럽 전체를 뛰어넘고, 2020년에는 세계 1위 미국을 넘어설 전망이다. 인도 역시 2020년에 세계 5위권에 진입이 확실시 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두 나라가 상호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선진국 따라잡기’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작년 11월 20일부터 사흘간 인도를 방문, 만모한 싱 총리와 외무부 장관 간 핫라인 개설, 양자투자보장협정(BIPA) 등을 논의하며 양국의 우의를 전 세계에 알려 과거 비동맹 외교에서 경쟁하던 일을 무색하게 했다. 이는 1996년 장쩌민 주석의 방문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두 나라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우리에게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중국과 인도는 각각 14억과 9억의 인구를 지닌 대국으로 이 둘을 합치면 전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은 ‘세계 제조공장’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가 몰려들고, 인도는 우수한 인력과 영어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연구개발(R&D) 센터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특히 IT분야에서 인디나의 위상은 가히 공포에 가깝다. 인도는 지금 전 세계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빨아들이며 ‘투자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9일 뉴델리에서 개막된 프라바시 바라티야 디바스(외국거주 인도인의 날)’ 행사에서 인도계인 자야쿠마르 싱가포르 부총리는 “인도가 없는 동아시아는 더 이상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은 7100억달러로 아세안 10개국 전체 GDP인 6000억달러보다 많다.
중국의 벽은 더욱 버겁게 다가온다. 자신감마저 충만하다. 작년 중국의 정보가전 수출은 30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발표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 규모와 맞먹는 수치다. 중국 신식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에서 생산될 휴대폰 10억대 중 4억대는 중국 제품이라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현대판 ‘황화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엄청난 인구, 낮은 임금, 여기에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선진국은 자국 경제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이들의 영향력을 우려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중국 관영 차이나 데일리는 “미국 성인 1000명 가운데 31%는 중국의 정치·경제 영향력이 커져 언젠가는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년 후진국으로만 알았던 인디나가 진행형으로 성큼 다가섰다. 거대한 시장을 앞세운 인디나의 장악력은 우리 IT기업에는 분명 위기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위기 속에는 항상 기회가 담겨 있다. 단지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일 뿐이다. 지금은 ‘IT코리아’의 저력으로 인디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할 때다.
홍승모 글로벌팀장@전자신문, sm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