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다려지는 최후의 전쟁

주몽·연개소문·대조영 등 바야흐로 사극(史劇) 전성시대다. 한때 동북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건국과 패망에 관한 이야기다. 시청률에 죽고사는 방송사들이야 하루하루 피가 마르겠지만 시청자는 마냥 즐겁다. 이 사극들이 지금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신생 고구려와 부여가, 당대의 두 영웅 이세민과 연개소문이, 당과 고구려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전운에 휩싸이고 있다. 클라이맥스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터질 것 같은 흥분이 있다. 클라이맥스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지금 눈앞에서는 또 하나의 극적인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다. 세계 디스플레이 대전이다. 등장인물은 한국의 삼성과 LG, 일본의 마쓰시타, 대만의 AUO다. 이 현실 드라마는 사극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복잡하다. 이 디스플레이 대전도 지금 막 클라이맥스로 향하고 있다. 전세는 세계 최강 액정디스플레이(LCD) 군단을 보유한 한국이 우위다. 삼성과 LG필립스LCD 양대 LCD 진영은 지난 2년여 동안이나 대만과 일본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같은 LCD군으로 정면대응한 대만 AUO가 가장 큰 피해를 봤다. 한때 삼성과 LG의 턱밑까지 쫓아왔던 AUO지만 끊임없는 인해전술에 혼비백산했다. 물과 양식이 바닥나 고사할 지경이다. 일본의 마쓰시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군 역시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전선이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삼성·LG LCD 진영의 완승이다 싶다.

 드라마에는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 후퇴만 하던 마쓰시타 PDP군이 공세로 돌아섰다. 정면대결을 펼친 한국과 대만의 LCD군이 서로 피를 많이 흘린만큼 전세를 뒤집을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마쓰시타 PDP군은 접전을 피해 쫓겨 다녔지만 상당한 군비를 비축했던 모양이다. 지난 2년여간 삼성과 LG가 그랬듯이 LCD군을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부을 태세다. 차제에 새 영토도 개척하고 LCD 진영이 차지한 영토마저 빼앗아 PDP 천하통일을 이루겠다는 야심이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이제부터다. 삼성과 LG가 LCD 천하통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불패의 LCD군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PDP군이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어 버려야 한다. 하지만 LCD군의 피로가 누적된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LCD 군사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다행히 삼성과 LG는 PDP군도 보유하고 있다. PDP군으로 마쓰시타를 방어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전략은 어렵사리 확보해놓은 LCD 영토 일부를 비록 아군이지만 PDP 군영 측에 떼어주어야 한다. 자칫 아군에게 돌아갈 영토가 마쓰시타에 돌아갈 공산도 있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사기가 한번 꺾인 LCD군이 걷잡을 수 없이 PDP군에게 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삼성과 LG의 선택에 달렸다. 세계 디스플레이의 진정한 패자가 LCD 진영이 될지 PDP 진영이 될지도, 아니면 서로 양분하게 될지도 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삼성과 LG가 어떤 전략으로 대응할지, 어떤 파국에 이르게 될지 궁금해진다.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클라이맥스를 기다리며 긴장되고 흥분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다. 지금 주몽은 부여와 한나라의 압박을 뚫고 동북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려 한다.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패주할 날도 머지않았다. 비록 고구려는 내분으로 허망하게 패망했지만 대조영은 유민들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할 것이다. 동북지역 패권도 되찾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드라마틱한 세계 대전을 정부도, 국민도 나 몰라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관심은 대선에 쏠리고 있을 뿐이다. 안시성에서 10만의 고구려 군사가 당의 100만 대군을 무찌른 것은 영웅적인 한두 명의 장수가 해낸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양만춘은 말했다. “안시성의 승리는 나나 우리 장수들의 힘이 아니었네. 안시성 주민의 일치단결된 힘 덕이었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