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느림과 탐사보도

설성인/459
설성인/459

새삼 느림의 미학을 생각한다.

 첨단기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수명을 다한 기기는 한순간에 스러지고 마는 디지털 시대에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다. 시간의 압박과 소비자의 외면으로 한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제품들이 쓸쓸히 무대를 떠나야만 하는 급박한 현실에서 느림의 미학을 생각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이 순간에도 초고속인터넷의 속도 경쟁은 끝이 없고 와이브로·HSDPA 등 기술의 진화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빠른 변화의 시대에 내몰려 있다. 변화의 한복판에는 디지털이라는 코드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폰 등 정보 단말기를 통해 매일 같이 세상 곳곳의 온갖 정보를 접한다. 그만큼 유비쿼터스 시대로의 진입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빠름’에 익숙해진, 그리고 순응해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매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역설적일지 몰라도 느림을 성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대중적 문화코드로서의 ‘느림’이 갖는 실재 가치나 의미는 매우 크다. ‘발걸음을 크게 떼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조급함을 탓하는 경구다.

 그동안 속도와 변화의 격랑 속에 함몰돼 있다가 무심히 놓쳐 버렸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디지털 시대의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천착하다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통찰력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제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하지만 인쇄매체가 이런 역할을 해준다면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기능을 인쇄 매체는 보통 탐사 보도라는 형태로 담아낸다.

 독자 생각에 충분히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사안이거나, 은폐 기도가 있거나 대중의 시야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을 들춰내는 탐사 보도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테마 가운데 하나다.

 비록 디지털 시대의 현상을 추적 보도한 것은 아니지만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탐사 보도의 모범답안으로 불린다. 1972년 리처드 닉슨의 재선으로 ‘워터게이트’ 추적 보도는 사라지는 듯했다. 선거 이후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의 기사가 몇 주일간 보이지 않자 일부에서는 정치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돌았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백악관이 연루됐다는 개연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두 기자의 기명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후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결정적으로 1974년 8월 ‘스모킹 건(smoking gun, 확증을 의미)’ 역할을 한 테이프가 공개되자 닉슨은 두 손을 들고 만다. 그는 미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지 나흘 뒤에,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워싱턴포스트의 탐사 보도는 오랜 기간 사건을 추적하고 증거를 찾아내면서 이끌어낸 결실이다. 이런 탐사 기능이 디지털 시대에도 필요하다.

 신문의 의제 설정력은 탁월하다. 오랫동안 추적 보도한 기사일수록 사회에 일파만파의 파급력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분석해야 할 정보와 사건이 넘쳐날수록 맥을 짚어주는 통찰과 해석 저널리즘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나가면서 끈질기게 파고들다보면 무언가 해답이 보일 것이다.

 ‘휘몰이’보다는 ‘진양조’의 장단으로 디지털 시대를 바라보는 느림의 지혜와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에 전자신문은 탐사보도의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은 미약하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IT업계의 무수한 현안과 문제점을 되짚어볼 것이다. ‘음’이 ‘양’을 구축하는 사례는 없는지, 따뜻하게 희망을 얘기할 수는 없는지 두루두루 살펴볼 것이다.

◆임지수 온라인/탐사기획팀장 j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