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율곡, SW, 한국

‘不出十年當有土崩之禍.’

 쉽게 풀어 얘기하면 10년이 못 돼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초등학생만 해도 알고 있을 법한, 이른바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이다.

 율곡 선생은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실용적 성리학자다. 그는 지금의 국방장관격인 병조판서를 맡으면서 일본·중국 등 국제정세를 분석, 10만 군사를 길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찍이 어질고 유능한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任賢能)는 사상을 기초로 한 ‘6조계’를 정치적 소신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만큼 국가 경영(治國)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중시했던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10만양병론은 최소한의 자위권인 셈이다.

 하지만 선조는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도승지였던 유성룡 등의 “평화시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반대론을 수용했다. 율곡은 오히려 위기감을 조성했다는 죄목으로 삼사의 탄핵을 받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9년 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에 위기론이 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의 간판격인 정보기술(IT) 분야의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최근 취임 20주년을 맞아 ‘샌드위치론’을 꺼내며 이 같은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그의 말의 요지는 ‘앞으로 20년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도 10.7%의 비약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본도 부활의 전주곡을 노래했다. 인도는 IT 잠재력을 앞세워 눈부신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겨우 4%대에 머물러 있다. 기술대국 일본은 저만치 더 앞서 나가고 생산대국 중국과 인도는 무서운 속도로 뒤쫓아 오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같은 상황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내 기업 286곳 중 54.5%가량이 ‘3년 후의 미래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10년 이상 먹거리를 마련한 기업은 불과 3개사(1%)에 그쳤다.

 소프트웨어(SW)도 마찬가지다. SW는 조선·항공·물류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 부문의 코어로 자리매김하면서 비중도 급증했다. 미국은 여전히 SW를 앞세워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고, 인도·중국은 SW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말 그대로 SW 패권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 위기론의 배경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는 SW를 차세대 먹거리로 지목했다. 현재의 먹거리인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TV·자동차·조선 등에 이어 향후 10년을 먹여살릴 먹거리로 SW산업을 키우자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인력이다. 이 분야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유휴 인력은 많지만 필요한 기술을 가진 인력을 선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출전사를 파견하기는커녕 베트남과 인도 등지에서 데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능한 인력은 게임·포털 쪽으로 대거 이동하고 전통 SW산업은 외면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국정보과학회에 따르면 오는 2010년까지 국내 SW분야에서 5000명 이상의 고급 SW개발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SW공학·운용체계(OS) 등 기반분야의 연구개발 투자가 미흡, 기업마다 전문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중급 SW개발 인력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는 경제력이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앞으로 5년, 10년 후의 먹거리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또다시 국가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SW산업발 미래의 위기도 배제할 수 없다. 오죽하면 ‘샌드위치론’까지 등장했을까. 율곡의 10만 양병론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졸면 죽는다’는 말처럼 패러다임이 시시각각 급변하는 21세기에 ‘SW 10만 양병론’은, 그래서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승정 솔루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