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국판 `노무라 보고서`

 일본의 싱크탱크 노무라총합연구소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회복하기 위해 제안한게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2.0’ 이다.이 보고서가 나온 2001년은 IT강국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바야흐로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시대가 만개하던 시기이다.

 노무라는 당시 일본이 붙잡아야 할 미래의 기회를 브로드밴드에서 찾을 것인가, 처음부터 한국과 미국을 뛰어 넘는 새 IT 패러다임을 창출한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브로드밴드에만 맞춘다면 일본은 그저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주도권을 빼았고 뺐기는 싸움만 벌일게 뻔했다. 브로드밴드의 미래라는게 결국은 대용량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영역에 국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라가 주목한 것은 4∼5년뒤 일본에 유비쿼터스시대가 본격 도래한다는 사실이었다. 노무라는 우선 기술적 진보와 보급확대가 동시에 진행돼야할 영역으로 모바일, 상시접속, 무장애(barrier-free)인터페이스, 차세대인터넷주소체계(IPv6), 그리고 브로드밴드를 지목했다. 그런 다음 여기에 일본의 장점이 적용된다면 통방융합과 같은 엄청난 산업구조의 변화가 올 것으로 확신했다. 이런 확신은 4∼5년뒤 그대로 적중한다. 적중했다기 보다는 일본정부가 보고서대로 ‘e재팬’과 같은 비전을 내놓고 이끌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일본은 유비쿼터스 분야에서 최강에 올랐고 유비쿼터스는 이제 세계 IT환경의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물론 한국의 ‘IT코리아’도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디지털기회지수(DOI)와 기술인프라 국가경쟁력이 1,2위에 올랐는가 하면 전자정부준비 지수는 5위를 했다. 국가정보화지수도 3위에 올랐다. 그런데 일본은 이기간 동안 디지털기회지수(3위), 국가정보화지수(11위), 전자정부준비지수(14위), e비즈니스준비도(21위) 등에서 모두 한국에 뒤진 것으로 나타난다. PC보급,이동통신가입자, 케이블TV가입자와 같은 개별 통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된 일일까.

 그 답은 이런 지수나 통계의 대상이 앞서 노무라연구소가 도마에 올려놓았던 브로드밴드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실제 IPv6주소 보유나 전자태그(RFID) 보급 같은 유비쿼터스 영역에서 한국은 모두 일본에 뒤진다. 브로드밴드의 성숙도를 뜻하는 초고속인터넷서비스 비용도 이미 일본이 우리보다 3배 가까이나 낮다. 한·일 두나라가 지난 4∼5년 동안 몰두했던 ‘IT코리아’와 ‘e재팬’의 차이가 뚜렷하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지난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국민’이라는 IT비전을 내걸었다. 앞서 5공화국 때는 5대 국가기간전산망 계획이 나왔고 6공 때는 TDX와 이동통신서비스의 츨현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문민정부 때는 반도체와 CDMA 신화의 터전이 만들어졌고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이 터전에서 IT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10대 성장동력’이 제시했다.

 하지만 ‘IT코리아’는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징후가 나타나듯, 세계는 ‘IT코리아’를 더 이상 한국의 전가의 보도로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왠만한 나라에서는 다 되는 IPTV서비스가 한국에서는 안되는게 또한 현실이다.

 ‘IT코리아’에 파묻혀 비전다운 비전을 보지 못한게 어언 10여년이다. 때마침 올해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내년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그런 점에서 올 해는 이를테면 ‘IT코리아 2.0’을 담아낼 한국판 노무라 보고서가 나와야 되는 시점이다. 이제 부터는 모두가 새 IT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서현진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