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달리는 코끼리

#자정 가까운 시간에 벵갈루루 공항에 내리니 비행기 몇 대가 연착된 공항입구 도로는 벌써 주차장이 됐다. 공항진입로는 옴짝달싹 못하는 차들로 꽉 메워져 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인도 IT현장 취재를 위해 지난 한 주 동안 벵갈루루와 첸나이 두 도시에 머무는 내내 그랬다. 곳곳에서 붉은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급작스레 매연을 뿜어대고 빵빵대는 차량들로 꽉찬 시끄러운 도로를 만났다. 뭄바이에 득시글거린다는 거지나 도로를 점거한 소떼는 가끔씩 보일 정도였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의 낮 시간. 버스도, 릭샤도, 오토바이도, 승용차도, 타타마크가 달린 RV도, 트럭도 달리고 있었다. 어쩌다 도로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람이나 말이 끄는 수레, 소떼조차도 달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인도의 전력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지라 첸나이에서 묵었던 호텔 건물의 전등불빛이 불안정하게 껌뻑거리는 것조차도 자연스러웠다. 밤의 거리 조명은 차량이 대신한다고 할 정도였다.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와 극명한 대조다.

 #벵갈루루 최고라는 리라호텔은 4성급. 가장 싼 방의 하룻밤 숙박비가 3년 전의 3배인 600달러로 올랐는데도 방은 항상 만원이란다. 그 비싼 호텔에 묵으면서 인도엔지니어를 고용해 쓰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게 현지 진출 한국인 사업가 정현경씨의 말이다.

 하지만 인도 취재과정에서는 70만이나 된다는 인도엔지니어 가운데 최고급 엔지니어 연봉이 4만달러에 이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뭐하냐”고 묻자 인도 엔지니어의 대답이 걸작이다.“10년 전 특정지역의 미국 엔지니어가 20명일 때 인도의 엔지니어가 100명이었다. 10년 후 인도의 엔지니어가 같은 지역에서 1만명 정도될 때 미국에서는 엔지니어가 사라질 것이다. 없는 나라에서 유용한 인력을 쓰게 되니 이익이다.”

 벵갈루루시의 첨단산업단지라 할 일렉트로닉파크 내 STPI(Software Park of India). 직원은 지난해 220억달러였던 인도의 IT수출액이 내년에 500억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자랑한다.

 벵갈루루 삼성전자인도법인(SISO) 관계자들은 “이제 인도 엔지니어 없이는 제품을 설계할 수 조차 없다. 1년에 이공계생 6만명이 배출되는 한국이지만 제대로 된 엔지니어를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위프로의 매니저는 인도 SW업체들이 프로덕트 엔지니어링과 니어소싱을 위해 중국과 일본에 만든 R&D센터를 자랑스레 얘기하고 있었다.

 인도경쟁력의 원천 중 하나인 첸나이 소재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마드라스 캠퍼스에는 혼자서만 14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교수가 벤처와 함께 만든 여나무 개의 제품을 보여준다. 곧 출하할 것이라는 ATM(Atomatic Tellin Machine), 원격영상진료시스템, 원격영상시스템, 컴퓨터와 유선전화를 연결하는 무선 통신중계기 등이 주욱 늘어서 있다.

 #인도인이 IT산업 발전을 바탕으로 ‘농업→제조→서비스’로 이어지는 로스토의 경제발전 단계를 ‘농업→서비스→제조’로 거슬러가고 있다는 책 속의 얘기는 현실이었다.

 잠깐이긴 했지만 인도 두 도시의 역동성을 보니 ‘세계는 평평하다’고 선언한 뉴욕타임스 토머스 프리드먼 기자의 말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는 인도 쪽으로 좀더 높이 경사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서울로 돌아오니 벵갈루루에서 만난 위프로 매니저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정부가 산업발전을 위해 모든 지원을 한다는 그의 말은 이랬다. “비즈니스가 정치를 움직입니다.”

◆이재구 콘텐츠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