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삼성의 인사 이전, 이기태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언제 보아도 당당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 그는 휴대폰 개발 사업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당시 경쟁제품에 비해 낮은 수신율을 높이기 위해 진땀을 뺀 과정을 추억처럼 이야기했다. “개발 과정에서 수신감도를 높이기 위해 고급 아파트 몇 채 값의 순금을 소비했다”는 너스레도 빼놓지 않았다. 최고의 기술을 향해 그는 무엇이건 아낌없이 투자했다.
삼성의 ‘애니콜 신화’ 뒤에는 이기태가 있었다. 크게는 한국 휴대폰 산업의 길 가운데 그가 있었다. 그는 중국 도시근로자 서너 달치 월급을 털어야 살 수 있었던 제품을 만들었다. 삼성 휴대폰을 명품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반도체 외에 크게 튈 것이 없었던 한국 IT산업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가 ‘코리아 프리미엄’을 실현한 IT 대표주자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이름을 건 휴대폰이 없다. ‘이건희폰’에 이어 연예인들의 이름을 딴 ‘이효리폰’ ‘전지현폰’ 등이 쏟아져 나올 때도 ‘이기태폰’은 없었다. 누구보다 먼저 이름을 올릴 만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붙여준 휴대폰은 없었다. 이 말은 반대로 모든 제품에 그의 이름을 걸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효리폰’이니 ‘전지현폰’이니 하는 것은 지어낸 말이다. 스타의 인기에 부합해 알기 쉽게 붙인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기태폰’이 없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늘 강조한 숨은 기술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카리스마와는 또 다르다.
그런 이기태 부회장이 휴대폰 사업에서 물러났다. 최지성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삼성 휴대폰 사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의 휴대폰 사업은 몇 년 전과 달리 영업이익이 줄고 시장점유율이 불안하다. 저가폰의 노키아가 예상 외의 선전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갈수록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략적 ‘터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은 최 사장은 삼성의 오랜 숙원을 푼 주역이다. 전자산업의 대표 상품인 TV를 세계 시장 최고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일본 TV의 아성을 누르고 한국의 ‘보르도TV’가 최고의 상품이 됐다. 그의 마케팅력은 대단하다. 평판TV에 관한 한 한국이나 일본이나 기술의 우위를 가리기 힘들다. 이러한 시장에서 무엇보다 깨기 힘든 브랜드 이미지를 깨고 그의 보르도TV는 단기간에 세계 최고의 상품이 됐다. 그는 마케터라고 자처한다. 그러한 최 사장의 능력을 삼성의 휴대폰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최 사장은 취임 후 얼마 안 돼 ‘최지성폰’이 언제쯤 나오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휴대폰을 맡자마자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은 최 사장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일일 게다. 그는 “‘최지성폰’이 어딨냐. 삼성에서 나오면 모두 다 ‘삼성폰’”이라는 말로 둘러댔다. 사람들은 나오지도 않은 제품에 그의 이름을 붙여댄다.
한국의 휴대폰 산업을 일궈냈지만 ‘이기태폰’은 없다. 하지만 최 사장의 취임 이후 사람들은 ‘최지성폰’부터 거론한다. 무엇이 옳으냐를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색깔의 차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한 명은 휴대폰 산업의 최대 공로자고, 또 한 명은 기대주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 휴대폰 산업이 위기라면 숙제는 최 사장이 지게 됐다. 따라서 ‘최지성폰’이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최 사장의 등장은 삼성 휴대폰의 전략 변화를 동반한다. 1라운드가 기술이었다면 2라운드는 마케팅이다. 이미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번 삼성의 인사를 두고 일부 호사가들은 삼성의 경영승계 구도부터 이야기한다. 이유야 어떻든 대한민국 IT 대표상품인 휴대폰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새로운 단초로 믿고 싶다.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한국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경우 퍼스널팀장@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