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변대규표 벤처기업`

 벤처계에 사표를 던진 한 CEO의 참담한 자기고백을 들었다.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다시는 기업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결론은 뜻밖이었다. 청중 앞에서 그는 앞으로 기업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보통 고백은 반성과 함께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재기가 아닌 결코 기업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한국 벤처의 대부로 조명을 한 몸에 받던 그였다. 하지만 상처난 그의 이력만큼 벤처경영에 대한 혐오도 강했다.

 벤처의 ‘기막힌 1막’이 끝났다. 좀 더 확대 해석하면 이 땅에서 사업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결론이 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혹한 실패다. 의기를 품고 시작한 벤처는 제대로 크지도 못한 채 줄줄이 주검으로 다가왔다. 벤처신화를 창조했던 메디슨이 그랬다. 잘 나간다던 터보테크도 그랬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벤처 신화인 팬택계열이 흔들리고 있다. 촉망받던 벤처 1세대 가운데 상당수가 싸늘한 감방을 경험했다. 특히 제조 벤처의 어려움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당연히 ‘하면 망한다’가 결론이다.

 벤처의 태생은 언제나 조촐하고 옹색하다. 뜻있는 몇명이 모여 버스종점 부근 후미진 곳에서 시작한다. 포장마차에서 결의를 다지고, 밤을 낮 삼아 일한다. 물론 성공 이전에 제대로 된 보수조차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벤처기업인 대부분은 학창시절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다. 스스로 안주하면 더 편안하고 안정되게 살 수 있다. 그들이 벤처를 시작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책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 중의 한 명이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이다. 그는 서울대 공대 박사다. 그 역시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항로를 바꿨다. 80년대 초 벤처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그는 벤처에 발을 내디뎠다. 옹색한 살림에 기술과 꿈만으로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숱한 곡절 끝에 그는 오늘의 휴맥스를 만들었다. 그 사이 그는 절친한 지인들이 망하고 일부는 차디 찬 감방에서 잠을 청하는 ‘못 볼 꼴’도 많이 봤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사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어렵다는 제조업에서 20년 넘게 버티고 있다.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두고 이젠 벤처 딱지를 떼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말한다. “한국 산업계는 사이클(주기)이 없다. 한번 대기업은 영원한 대기업일 뿐이다. 역전의 스릴이 없다.” 중세시대 신분제와 같다. 한번 벤처기업은 영원한 벤처기업이고, 대기업은 영원한 대기업일 뿐이다. 기업경영이 ‘카스트’ 신분제도 아닌데 묘하게 꼬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천민’인 벤처는 대기업인 ‘귀족’이 될 수 없다. ‘갑’ 한번 돼보려고 욕심을 부리면 결과는 망하거나 감방에 간다. 서글픈 벤처의 현실이다. 또 IT강국에서 스타 벤처기업 하나 변변히 없는 이유기도 하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변대규의 휴맥스다.

 잠시, 벤처 생태계의 스위치를 꺼두자. 제조업의 현실은 또 어떤가. 제조업이 나라의 근간이라는 70년대 ‘공업 우선주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조업을 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정부의 육성의지와 별개로 현실은 따로 논다. 대부분 중소 제조업 CEO는 미래 사업전략보다 당장 돌아올 어음과 부진한 매출 메우기에 ‘똥줄’이 탄다. ‘제조 실종’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서도 변대규의 휴맥스는 모범답안이다.

 돈 냄새로 벤처를 유인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벤처’에 목소리를 높이던 정부도 어느새인가 말꼬리를 흐리고 있다. 벤처 창업의 이유를 들라고 하면 단 한 가지도 자신있게 답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유기체와 같은 산업에 벤처는 새 생명이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 것과 같이 산업에서 벤처의 공급은 산소와 같다.

 그래서 벤처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사표(師表)로 정할 기업의 존재는 필요하다. 이제, 휴맥스가 없으면 벤처 육성을 말할 근거가 없다. 벤처 2막의 모델로 ‘변대규표 벤처기업’이 필요한 이유다. ‘벤처 카스트’를 깨고 한국의 ‘시스코’를 꿈꾸는 자들에게 그는 희망이다.

◆이경우 퍼스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