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가 방송서비스로 분류되는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저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도 아니고, 군부독재가 횡행하는 남미 국가에서도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IT 최강국이었다는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IPTV 도입 논의가 벌어진지 12년 만의 일이다. 결국 방송서비스로 귀착되고 말일을 그 오랜 동안 별의별 소모전을 다 벌여온 셈이다. 너무 싱거워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이고 할게 없다. 그동안 통신과 방송이 나뉘어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는지 조차 의아할 정도다.
IPTV가 방송서비스로 분류되면 그 규제 근거는 당연히 방송법이 된다. 알다시피 IPTV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을 가진 통신과, ‘공익’을 전달하는 한방향 플랫폼인 방송 간의 융합물이다. 지금까지 통신은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방송은 방송법에 의해 각각 규제를 받았다. 통신과 방송이 서로 다른 법으로 규제돼온 것은 그 목적이 다르거나 그만큼 이질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방송법은 KBS나 SBS와 같은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서비스권역이 전국 77개로 나눠진 케이블TV(SO)사업자를 규제하는 법이다. IPTV에 방송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IPTV를 케이블TV처럼 다루겠다는 뜻이다. IPTV사업자가 방송서비스 시장에 진입하려면 ‘공익’을 담보로 엄격한 사전 심사(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IPTV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케이블TV 쯤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다.
이렇게되면 그동안 통신사업자의 움직임에 노심초사해온 케이블TV사업자들이 한 시름을 놓을수 있게 된다. 거대자본을 가진 통신사업자의 이른바 ‘방송 장악’ 기도를 자신들의 규모나 수준으로 묵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이 일반 소비자(수용자)들에 까지 통할지는 미지수다. IT강국의 국민으로서 지위(?)를 톡톡히 누려온 다수의 소비자들은 왜 온전한 IPTV서비스가 불가능한지 묻게될게 뻔하다. 결국 케이블TV 사업권을 위해 그 방대한 네트워크 투자에 나선 꼴이 돼버린 통신사업자들의 심정도 또 어떨까.
그렇다고 전기통신사업법으로 IPTV를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방법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라 양쪽 모두 반대할게 분명하다. 케이블TV사업자들로서는 작두가 필요한 곳에 손 가위를 들이미는 격이라며 펄쩍 뛸 것이다. 통신사업자 역시 기간통신이니, 부가서비스니 하여 모든 서비스를 칸막이식으로 분류한 전기통신사업법 적용을 굳이 환영할 리가 없다.
‘융합서비스법’과 같은 제3의 법체계를 만들자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법이 등장하면 당분간은 케이블TV와 IPTV가 병립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융합서비스가 케이블TV를 흡수하게 될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나 기술 추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서비스산업 창출을 기대해온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환영할만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11년째를 맞은 케이블TV업계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종언을 예고하는 이런 법체계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결국 IPTV가 도입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은 지금으로선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IPTV를 방송서비스로 분류한 것은 케이블TV사업자의 입장을 더 고려했다는 얘기가 된다. 통방융합이라는 대세보다는 케이블TV가 주장해온 ‘공익’이라는 것을 택한 셈이다. 물론 이런 배경에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들의 살을 에는 고민이 없지는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통신도 아닌, 방송도 아닌, IPTV가 방송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현진 정책팀장·부국장대우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