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밥 잘 짓는 법

 얼마 전 저녁밥상에 올라온 밥이 설익은 삼층밥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집에서 저녁 먹을 일이 드물었던 나에게 느닷없는 삼층밥은 사실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의 밥 짓는 경력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생쌀을 씹다 못해 인스턴트 밥에 의존해 끼니를 해결했다. 하지만 아내는 극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평소와 같이 쌀을 30분간 불리고 전기밥솥의 자동취사를 눌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삼층밥이었다.

 문제는 전기밥솥에 있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한 원인규명은 힘들었다. 사후서비스(AS)를 받아본 결과 전기밥솥의 고장으로 판명됐다. 아내는 이내 전기밥솥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새로 하나 사자고 제의했다. “아직 멀쩡한데 뭘, 또 새로 사냐”고 핀잔을 주었다. 전기밥솥 하나의 고장이 간만의 정다운 한 끼니를 망쳐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전기밥솥이 없었던 시절 같으면 구박맞기 좋은 일이다. 아내로서 밥을 잘 지어야 하는 본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본분보다 밥솥에 핑계를 돌린다. 또 그말에 순순히 수긍한다. 작은 밥솥 하나지만 정보기술(IT)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생활 곳곳을 둘러보면 IT에 기대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 금방 알 수 있다. 하루를 IT로 시작해서 IT로 끝낸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후의 느끼는 불편함, PC가 아닌 수작업의 문서 처리 등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인터넷으로 생활정보를 찾고, 공부를 한다. 역작용이기는 하지만 대화보다는 MP3P에 의존하는 청소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굳이 첨단이 아니어도 생활 주위에 묻어 있는 IT의 힘은 크다. 전기오븐으로 생선을 굽고, 김치를 익히는 데도 IT를 사용한다. 자신도 모르게 ‘IT도취 증후군’에 걸려 있다. 있을 땐 몰라도, 없으면 금방 불편함을 느끼는 심한 ‘IT중독’이다.

 ‘중독(?)상품’은 잘 팔리게 마련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오기 때문이다. 편리함을 맛본 소비자는 결코 불편함을 못 참는다. 더 편하고 기능이 다양한 상품을 찾게 마련이다. IT상품은 이러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하지만 최근 IT성장동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에 업계가 바짝 긴장했다. IT투자가 계속 줄어든다는 우려 속에 한국은행이 최근 보고서를 통해 ‘실속없는 한국의 IT산업’을 비난했다. 경제성장에서 IT인프라의 역할이 끝났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대로라면 한국에서의 IT는 ‘사망진단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시장을 보고 투자하는 기업으로서는 투자를 줄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경제성장에서의 IT는 아직 유효하다. 아무리 사망진단서를 발급해도 수출의 30% 이상을 IT가 이끌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반도체와 휴대폰이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이보다 투자 유망한 우량아가 없는 상황이다. 또 이미 IT에 중독된 수많은 고객을 인프라로 확보하고 있는 이상 시장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IT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다했다고 말할 때마다 IT의 선명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현재 발전 가능한 시장과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한다면 단연 IT밖에 대안이 없다.

 이제 주부가 잘못 지은 밥까지 IT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심지어 김치 맛과 생선구이도 책임진다. 그만큼 의존도가 커졌다는 얘기다. ‘예쁜 마누라보다 음식 잘하는 마누라가 더 좋다’는 시쳇말도 옛말이 될 정도다. 잘 지은 밥을 먹기 위해 아내의 밥 짓는 기술을 바랄 게 아니라 전기밥솥에 투자해야 한다.

 저녁밥상을 아내의 조리기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IT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 IT가 중요하고 투자를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이다.

이경우 퍼스널팀장@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