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벨은 1960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고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안 돼 중국의 덩샤오핑은 죽의 장막을 걷어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이데올로기 대신 실익을 추구했다. 10년 후엔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이데올로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소련 공산당이 없는 세계에서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다. 세계의 모든 질서는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해 재편됐다. 글로벌화의 시작이었다. 초창기 글로벌화는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만이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바로 이때쯤 니컬러스 네그로폰테는 “디지털이다”고 외쳤다. 디지털은 모든 것이 0과 1로 대체된다. 다름은 있어도 구분은 없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도, 고흐의 자화상도, 나의 목소리마저도 0과 1의 서로 다른 순열에 불과하다. 서로 달라도 물리적 구분이 없는만큼 통합도 쉽다. 그래서 네트워크화와 컨버전스가 대세다. 통합과 융합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본 질서와도 일맥상통한다. 디지털은 거친 글로벌 스탠더드에 세련된 토대를 제공했다. 디지털은 탈산업사회에에서 정보화로 이행하는 세상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제리 양과 야후를 시작으로 세계는 디지털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는 순식간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0과 1을 거부한 채 고유한 물질적 특성을 고수하려는 아날로그는 찬밥 신세였다. 아날로그 기술과 아날로그 기업은 글로벌화·디지털화의 최선두에 있는 미국 밖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에는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기업들로 채워졌다. 지금 그 정점에 스티브 잡스와 애플, 페이지와 브린, 구글이 서 있다.
그런데 디지털 천하에서 아날로그의 역습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아날로그 기업을 하나 둘 집어삼키고 있다. 퀄컴이 버카나와이어리스를, 아날로그디바이스가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를, 실리콘모션이 에프씨아이를 각각 인수해 갔다. 불과 1여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인수된 세 기업은 모두 무선통신에 필요한 주파수를 발생시키거나 수신하는 아날로그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결코 적은 돈도 아니다. 1억달러 안팎에 팔렸다. 해당 벤처기업 매출액의 몇 배에 해당한다.
디지털 포식자들이 아날로그 기업에 군침을 흘리는 까닭은 디지털에 식상했기 때문이 아니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다 차지할 것만 같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비트가 아니라 원자와 분자라는 아날로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아날로그에는 맛과 향기가 있고 차별성이 존재한다. 글로벌 스탠더드화된 디지털 세계에는 더는 진입장벽이 없다. 표준화된 모듈이나 코어를 갖다붙이면 그만이다. 디지털 포식자들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멈출 수 없다. 무한경쟁에서 졸면 죽는다. 무한경쟁에 지친 디지털 포식자들은 이제 차별성을 추구하려 한다. 살과 피, 뼈가 있는 몸을 원한다. 손과 발, 입과 강한 이빨을 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작지만 강한 아날로그 기업들이 가지고 있다.
이어령 박사는 디지로그 시대를 예언하고 예찬했다. 디지로그 세상은 아날로그에 강한 우리가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디지털에 매몰돼 있는 사이, 배부른 포식자들은 아날로그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디지털의 확장성에다 아날로그 몸통, 강한 이빨까지 갖추려 한다. 디지털 포식자들이 집어삼킨 버카나와이어리스, 인티그런트테크놀로지즈, 에프씨아이는 모두 한국인이 일구었다. 세계적인 아날로그 기술을 갖춘 기업이다.
이들 벤처의 성공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면서도 못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아날로그의 역습에 대비해야 한다. 디지로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