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산업 이젠 속도조절을

 “너무 빨리 갑니다. 사업이 웬만큼 된다 싶으면 다른 서비스기술이 나와 기존 사업을 포기해야 하고요. 간신히 쫓아가면 또 바뀌고. 정말 힘듭니다.”

 최근 만난 몇몇 통신사업자와 장비업체 경영자의 얘기다. 뜻밖이었다. 통신사업자는 어떤 기업인가. 가입자가 정체되겠다 싶으면 새 서비스기술을 내놓아 수요를 창출하는 게 이들의 속성이 아닌가. 장비업체 역시 새 장비의 공급 길이 열리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사업자들은 신규 서비스로 가입자 정체를 타개했지만 곧 다시 포화하니 다른 대체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통신장비 등 후방산업계로선 물건을 다 팔기도 전에 새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10여년간 허겁지겁 달려왔건만 얻은 게 별로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서비스이든 장비든 라이프사이클이 이렇게 짧으니 지칠만도 하다.

 사실 우리 통신 기술은 너무 빨리 발전했다. 초고속인터넷은 VDSL을 넘어 100메가 시대까지 왔다. 이동통신은 세계 최고 수준인 WCDMA/HSDPA를 넘어 이젠 모바일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구현하는 HSUPA시대를 코앞에 뒀다. 외국에선 VDSL 붐이 이제서야 일었다. 이동통신도 우리보다 한두 단계 아래인 CDMA EVDO와 WCDMA로 넘어가는 수준이다. 저개발국이 아닌 선진국 얘기다.

 통신기술이야 늘 발전하게 마련이다. 사업자들이 신기술을 접목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산업 전반에 긍정적이다. 문제는 그 결실을 제대로 거두기 전에 다른 신기술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오는 20일부터 무선랜서비스(와이파이)를 중단한다. 4년 넘게 시범서비스만 하고 결국 상용화 한 번 못해봤다. KT도 네스팟 사업의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다. 무선랜은 충분히 쓸 만한 서비스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HSDPA·모바일와이맥스(와이브로) 등 너무나 많은 대체 서비스가 나오자 갈 길이 희미해졌다. 미국은 최근에야 지방자치단체와 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무선랜 네트워크를 열심히 구축 중이다.

 와이브로 역시 이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정보통신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10년께 900만에 육박할 것이라는 와이브로 가입자 전망치를 189만으로 수정했다. 업계는 수정치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본다. 세계 최고의 통신 인프라와 서비스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TV를 보는 장면은 외국인의 눈에 보기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속된 말로 ‘폼’이 난다. 하지만 그래서 얻은 게 과연 뭘까. 한마디로 실익이 없다.

 이젠 ‘돈 쓰는’이 아닌 ‘돈 버는’ 통신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통신사업자가 아닌 일반 기업과 국민의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는 그런 인프라다. 미국에는 아직도 다이얼업 모뎀을 쓰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라면 아마 원시인으로 취급될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 느려터진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비즈니스를 한다. 멀쩡한 TV를 놔두고 작은방에서 인터넷으로 TV드라마를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에게는 되레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우리의 막강한 통신인프라를 일반 산업과 경제에 어떻게 접목시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신규 서비스 도입 시기를 과감히 늦춰도 된다.

물론 통신 기술 리더십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얼마나 힘겹게 얻어낸 리더십인가. 그렇다고 너무 앞서가 외톨이가 되어선 곤란하다. 앞서가봤자 외국 정부와 통신산업에 ‘테스트베드’만 제공하는 꼴이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통신서비스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두세 걸음 앞서간다. 반걸음이나, 한 걸음 정도 차이만 둬도 좋겠다. 그래도 추격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통신 속도가 세상에서 가장 빠를 것이다. 하지만 삶과 비즈니스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통신을 활용하는 머리회전 속도는 아직 다이얼업 모뎀 수준일지 모른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