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보보호법과 허풍선이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거나 과장이 입에 발린 사람을 보면 숫제 ‘허풍선이’라고 한다. 살다보면 주위에서 이런 유의 사람을 가끔 보게 된다. 하는 말마다 진심인 듯 보이고 과장도 그럴듯해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대부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눈과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시선은 한곳에 집중하지 못한 채 허공을 유영하고 입술에서는 쇳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의학적이거나 심리학적인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다.

 어쨌든 허언(虛言)은 금방 탄로나게 마련이다. 한순간을 넘긴다 해도 오래가기란 쉽지 않다. 문제는 허언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그걸 즐긴다는 것이다. 오히려 습관이나 병증에 가깝다. 그만큼 의도 자체에는 악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허언을 일삼는 사람 중에 정치인만큼 좋은 예도 없을 것이다. 일부 정치인의 허언은 너무나 기술적이고 교묘해 분간하기 어렵다. 말하는 순간 진심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진심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인인 정치인의 허언은 결과론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정보보호법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기술과 사회 등 제반 환경도 급변했다. 국회 상임위 소속 의원의 얼굴도 바뀌었다. 아직도 개인정보보호법 타령이냐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 같은 환청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허풍선이 의원들의 호기로움도 여전하다.

 어느덧 2007년도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구두선일 뿐이다. 입법의 권한을 가진 국회를 탓할 수는 있어도 정부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벌써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기반보호법·정보화촉진법·전자서명법·전자거래기본법·전자거래소비자보호법 등 손에 꼽기조차 힘들 정도다. 최근에는 아예 부처별로 건강정보보호 및 운영에 관한 법률, 학생정보보호기본법 등도 추진하고 있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론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정치세력 간, 부처 간, 업계 간 이해가 걸려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후가 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그 사이 각종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잇따랐다. 리니지의 명의 도용사건과 공공기관 홈페이지의 개인정보 유출 등 대형 사건만 해도 부지기수다. 통계적으로도 공공기관 웹사이트 해킹이 전 세계 4위에 육박할 정도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움직임은 요원하다. 대선정국으로 들어서면서 국회는 실종되고 민생법안은 우선순위에서 사라졌다. 의원들이 대선주자를 쫓아다니다 보니 국회 자체가 개점 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하반기에도 기대할 건 없을 듯하다.

 행자·문화·산자·정통 등 정부부처도 마찬가지다. 부처이기주의가 대선정국을 만나면서 핵심 이슈들이 물밑으로 사라졌다. 국회가 실종된 마당에 가능한 게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동안 해온 일을 마무리 하고 현재 가능한 것만 해결하겠다는 식이다.

 현실론을 인정하는 것일까. 학계도 조용한 듯하다. 그동안 개인정정보보호법 제정에 목청을 높였던 그들이다. 대선정국이란 블랙홀이 이 모든 논쟁을 빨아들인 모양이다. 심지어 비즈니스 이해가 걸린 기업도 잠잠하다. 기대가 꺾인 것이라고 이해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동안 허언으로 국민을 속인 정치인을 분리해 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입발림이나 눈가림이 선수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기준은 분명하다. 결과론을 보면 된다. 지난 3년여 동안 허언만 내세우고 아무런 결과물을 내지 못한 정치인을 내년 4월 총선에서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국민보다 공천권만을 의식, 대선주자만 해바라기하는 의원들을 심판해야 한다. 내년 4월에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그런 허풍선이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 <박승정 솔루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