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실크로드 인플루엔저

[데스크라인]실크로드 인플루엔저

 ‘업로드 수 1500여건, 추정 조회 수 수억건.’ 요즈음 유튜브에서 뜨고 있는 한국산 게임 ‘실크로드(SilkRoad)’의 사용자제작콘텐츠(UCC) 얘기다. 이는 출시 1년째인 이 게임을 향한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말해준다. 제작사는 “중국·이슬람·유럽 등 동서양 문화를 연결하며 전 세계 인구 70%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인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게임에서는 7세기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지역의 실크로드를 관류하는 대서사가 전개된다. 실크로드는 실제로 8000㎞에 이르는 긴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시공을 초월한 신화·민담·탐험기·야담 등을 사람·괴수와 함께 어우러진 초월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모스크·홍등가·도박장·시장 등 이색요소가 버무려진데다 천편일률적인 전투신 외에 무역까지 포함돼 있다.

 하루 조회 건수만도 수억회인 유튜브에 등장한 실크로드UCC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수년간 내리막길로 치달아온 우리 게임산업 현실의 안타까움 때문이다. 엊그제 SW산업진흥원에서 나온 자료 등에서도 보듯 지난 수년간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의 태동과 급성장을 견인했던 우리 게임이 요즘 말이 아니다. 국산게임 성장률 0.8%대 성장의 위기까지 말해지는 이때 중국 게임산업은 향후 2011년까지 20% 안팎의 고속성장을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최대 게임 수요자 중국이 부쩍 성장, 오랜 문화적 전통에 게임산업을 접목시키면서 정부와 산업계가 한국 타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CDC 같은 업체는 한국에 포털을 두고 정식 글로벌서비스까지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치 저간의 불법 한국게임 서버에 대한 인식을 한방에 날려버리겠다고 선언이라도 하듯이. 문화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중국의 열정적 공세에 우리 게임업계가 자칫 밀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의구심까지 자아낼 정도다.

 이런 차에 등장한 실크로드UCC 흡인력의 배경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면 우리 게임업계가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기존의 틀과 함께 그 반대 또한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게임 ‘바람의 나라’는 고구려·부여 등 우리의 고대국가를 소재로 한 제국건설을, ‘리니지’는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복수와 왕권탈환을 얘기했고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15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펼쳤다.

 “실크로드는 한국산 게임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말한 개발자의 얘기는 의미 있다.

 그간 우리가 만든 한류게임이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내려 했었다면 실크로드는 전 세계인이 아는 소재를 우리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공감을 얻으려 했다. 실제로 ‘알파블로거’의 관심을 얻은 실크로드는 매달 15억원의 매출을 가져다 줄 정도로 개발사에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통한’ 실크로드의 교훈은 시장에 끼치는 높은 영향력으로 소비자의 구매행동까지 좌우하는 1500여개의 UCC를 올린 이른바 ‘인플루엔자’의 영향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 게임업계는 더 이상 ‘MMORPG의 선구자’라는 빛바랜 구호의 깃발 아래 세계 최고란 자만심으로 있을 수만은 없다. 문화의 다양성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더 많은 ‘인플루엔자’를 끌어내야 우리 게임업계의 미래에도 희망이 있다.

 이재구·콘텐츠팀장@전자신문,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