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사업도 기본은 수익 창출이다. 시장원리에도 민감하다. 화려했던 컴덱스쇼가 지고 관심에서 멀어졌던 CES가 다시 뜬 것은 시장원리다. 주관이나 주최측 간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똑같은 반도체 전시회건만 미국 세미콘이 주최하는 세미콘코리아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주최하는 반도체산업대전은 좀처럼 합쳐지지 않고 있다. 비용을 치르는 참가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전시 참가 비용을 감수할 만한 효과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눈길을 끌 수 있어야 한다. 관람객없는 전시회란 있을 수 었다. 그러려면 성격이 분명해야 한다. CES가 최신 기술과 제품을 발표하는 경연장이라면 세빗쇼는 바이어와 구매 상담을 벌이는 곳이다. CES에서는 기술 추세를, 세빗에서는 시장 환경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전시회는 저마다 목표가 있고 이에 따라 참가자와 관람객이 달라진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 세계적인 전시회 하나 없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전시회가 없는 게 아니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전시회는 많다. 유사한 전시회도 난립해있다.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전시회 때마다 업체는 곤욕을 치른다. 전시회마다 참가를 권유하는 바람에 이만저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말이 권유지 사실상 강요다. 오죽하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이제부터는 국내 전시회에는 한 곳 빼고 일절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겠는가.
이럴 바엔 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게 낫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업체는 불필요한 시달림에서 해방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솔솔 빠져나가는 적지 않은 참가비도 절약할 수 있다. 주최측도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세계적인 전시회로 발전시키려는 염원에도 부합한다.
그래서인지 통합이 탄력을 얻고 있다. 2년 전 5종에 달하던 기계전이 이른바 한국기계산업대전으로 통합됐다. 연말에는 난립돼 있던 게임전시회가 지스타 즉, ‘글로벌 게임엑스포’로 뭉쳐졌다. 올 초에는 역시 5종의 IT관련 전시회가 한몸뚱이인 한국정보통신대전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에는 한국전자전·반도체산업대전·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 등 전자관련 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명칭은 아마 ‘한국전자산업대전’쯤일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는 왠지 썰렁하다. 좋아하거나 반기는 기색이 없다. 전시회 주최측이었던 곳에서는 볼멘소리만 터져나온다. 가장 신나야 할 업체는 시큰둥하기만 하다. 주최측이나 참가측 모두가 불만이라면 과연 누굴 위한 통합인지 헷갈린다. 전시회 통합이 모두의 이해관계를 합치시키는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추진되고 있는 전시회 통합은 물리적 결합에 그치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전시회는 아직 동원 문화 수준이다. 대부분 물심양면으로 정부 지원에 의존한다. 유사한 전시회도 주관부처에 따라 주최자가 달라진다. 고만고만한 전시회가 많아져 구조조정이 시급해진 원인이다. 대부분이 사실상 법정관리(?)다 보니 순수 민간전시회는 발 붙이기도 쉽지 않다. 정부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칼을 빼든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제는 방법이다. 통합의 목적은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춰 세계적인 전시회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통합방식은 비슷하면 다 모이라는 식으로 비쳐진다. 말 그대로 대전(大殿)이다. 대중성이냐 전문성이냐 하는 전시회의 성격, 관람객의 차별성, 전시회마다의 자생력과 경쟁력, 이로 인한 주최자 간 갈등은 소홀히 다뤄지는 듯하다.
그동안 굵직굵직한 전시회 통합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산통(産痛)이 따랐다. 며칠 전에도 디스플레이학회가 내년에 있을 전자대전 통합에 반대하고 나섰다. 통합에 관련된 각 주체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불만이다. 전시회 통합이 의도는 좋지만 자칫 또 하나의 전시행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