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디지털 문화지수를 만들자

[데스크라인]디지털 문화지수를 만들자

 프랑스의 문화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어떤 민족보다도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일부에서의 ‘자만심의 발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민족’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만큼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자긍심이 강하다. 국제무대에서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프랑스의 그런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들만이 갖고 있는 다양성과 자부심이 아닌가 싶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종이 산다는 프랑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문화도 서슴지 않고 수용한다. 자신들이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문화의 우월성’이 대외적 자신감으로 연결될 때 문화강대국으로 발돋움한다.

 디지털 환경에 지배받고 있는 지금의 문화강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날로그로 정형화된 문화적 우월성이 디지털시대에도 강점으로만 부각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각국이 내세우는 강국의 기준이 다르며 디지털시대의 강국 또한 그 의미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디지털강국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시대적 소명은 무엇일까. 이미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IT강국이다. “공상과학소설(SF)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현실로 만들며 무선통신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뉴욕타임스 보도도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이미 3G 서비스를 개시, 세계 시장 선도에 나섰으며 우리나라의 행보는 전 세계 IT산업계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초고속인터넷·휴대폰·무선인터넷·DMB단말기 보급률 등 IT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하는 디지털기회지수(DOI)에서는 3년 내리 1위를 기록했고 전자정부준비지수 또한 정상권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프라 지수가 수위권이라는 것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인프라만 선진국이지 정보통신기술이 낳은 사이버 문화가 세계적 수준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내용에서 과연 질 좋은 인터넷 콘텐츠 문화가 형성돼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리플문화가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그보다는 악플로 인한 폐해가 더 많다. 알다시피 결국 꽃다운 나이의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의 ‘패거리 문화’는 인터넷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전형이다. “건전한 비판은 실종되고 저주만 있는 욕설공화국”이라는 한 월간지 편집장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벌일 ‘낙인찍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제 사이버 공간은 진지한 토론의 장이기보다는 진흙탕 싸움터로 변질돼 가고 있다. 정보의 보고인지 쓰레기 하치장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UCC나 블로그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종종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좋은 내용도 있으나 대부분 각종 콘텐츠를 퍼오거나 ‘몰카’ 수준이다.

 IT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젠 인프라뿐 아니라 문화 측면에서도 세계 수준에 올라야 한다. 우리 모두 나서 건전한 사이버 문화 정착에 힘을 쏟을 때만이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야만 명성에 걸맞은 진정한 IT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향후 IT문화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디지털문화지수(DCI:Digital Culture Index)를 우리나라가 주도해 만들면 어떨까 한다. 디지털기회지수(DOI)처럼 여러 가지 평가항목이 있듯이 인프라·문화적 측면을 포함한 계량화된 지수를 도출해 내면 되지 않을까. 예컨대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지성, 인터넷의 욕설이나 댓글 문화, 지재권 준수 등의 평가를 수치로 계량화하면 될 것이다. 이를 ITU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제안,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시대의 문화강국, 그것은 다가올 미래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

 j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