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SF(Science Fiction:과학적 공상으로 상식을 초월한 세계를 그린 소설. 공상과학 소설) 열기가 뜨겁다. 로봇, 외계인, 괴수 등이 출연하는 작품이 영화 시장 등에서 큰 흥행을 거뒀다.
올해 들어 외산 SF 영화인 ‘트랜스포머’ ‘스파이더맨3’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부활을 알렸다. 국산물로는 괴수 판타지극인 ‘디-워’가 논란 속에 78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에 앞서 ‘괴물’은 지난해 1300만명 관객으로 한국영화 신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들의 입장료만 계산해봐도 2300억원에 이른다. DVD, 인터넷 영화 상영 등을 감안하면 시장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 ‘SF’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장사’가 된다는 얘기다. SF 장르가 갖는 특성,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경우 내수뿐 아니라 세계 시장 공략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SF의 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화내빈의 한국 SF장르=영화를 기준으로 할 때, 역대 흥행작 중 한두 편만 국산 창작물이다. 고스란히 시장을 외산 작품에 내주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강국을 자부하는 나라에 걸맞지 않은 현실이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성냥팔이소녀의 재림’ ‘원더풀 데이즈’가 각각 2002년 이후 화제를 모으며 제작됐지만,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국산 소설이나 만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마나 성공한 작품도 내면을 보면 초라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외국의 특수효과(SFX)에 의존한 한계를 드러냈다. 디-워, 로보트 태권브이는 각각 애국심, 추억 등으로 고객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으로 승부했다고 보기 힘들다. 영화평론가 이철민씨는 “괴물 등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관객을 동원한 SF영화를 찾기 힘들며, 괴물과 (SF인지 논란이 있지만) 디-워 등이 나타났다고 한국 SF 영화가 잘된다고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왜 SF장르인가=그럼에도 SF는 유의미하다. SF 장르는 소재가 과학기술이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멜로 위주의 한류가 주로 동남아 시장에 머무는 것에 비해 과학기술을 다루는 SF 장르는 세계화 장벽이 낮다.
고장원 CJ미디어 국장은 “트랜스포머는 원래 일본 만화였지만 미국에서 제작돼 흥행한 뒤, 세계로 퍼진 사례”라며 “SF물은 공간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보편 타당성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만화·소설·게임을 막론하고 우주 공간과 상상력,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만 있으면 세계 시장 공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접목할 때,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특수효과 전문업체인 인디펜던스의 박영민 상무는 “한국의 특수효과 수준이 높다고 보며,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 업체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사례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특히 상상력이 풍부한 국산 작품이 흥행하면 특수효과 산업뿐 아니라 게임, 캐릭터, 문화 등 후방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명실상부한 디지털 콘텐츠 강국을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지적이다.
◇SF장르에 대한 인식 바꿔야=그러나 SF 장르에 대한 투자는 인색하다. 우선 소설, 만화 등의 순수 창작물이 등단할 공간이 거의 없다. SF작가인 김민수씨는 “공모전 등이 SF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2∼3개도 이제 열리지 않아 신인 작가들이 창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수효과(SFX) 등에 대한 투자도 미진하다. 개별 영화사 수준에서만 투자가 이뤄지는 등 체계적인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SF장르를 독립 분야로 볼 것이 아니라 과학문화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SF장르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미지 형성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장원 CJ미디어 국장은 “이공계생에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수단, 과학기술 사회에서 소양있는 인력 양성 방법, 문화콘텐츠 산업 진흥 등을 모두 고려한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탐사기획팀=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 김규태·한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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