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던 SF 장르가 한국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스타워즈의 우주선 장면이 한국 기술로 구현된다고도 하고, 한강에서 뛰어노는 괴물에 관객이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SF 장르가 독자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최근 현상이 SF 장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거품’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영화의 경우 특수효과(SFX)에만 치중해 내용이 부실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 SF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현실이다. 상상력 산업이자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한국의 SF 장르가 제대로 꽃피울 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SF 관심, 거품일까 트렌드로 이어질까=본지가 20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SF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10명 중 3명 꼴(29.9%)로 SF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2위인 멜로(19.6%), 3위인 코미디(13.5%)를 10% 포인트 이상 앞선다. 성별·직업별·연령별 등 모든 변수에서 SF가 1위를 차지했다. SF 장르에 대한 관심 정도를 묻는 또 다른 질문에도 10명 중 6명 이상이(63.1%)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SF 장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간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인 것이다.
이는 SF 장르가 어느 정도 내수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영화의 경우 ‘엑스맨:최후의 전쟁’ ‘수퍼맨 리턴즈’ ‘포세이돈’ 등은 지난 해부터 국내에서 1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SF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SF와 유사한 작품이라면 보는 관람문화가 형성된 셈이다.
◇아직은 흥미 위주로 접근하나=그렇다고 한국 관객들이 SF물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SF물의 걸작으로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 ‘은하 영웅전설’ 등에 대한 인지도가 각각 40%, 21.2%에 불과했다. 괴물, 아톰 등이 90% 수준에 달하는 것과 대비된다. 또, SF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상상력만 풍부하면 된다는 대답(33.5%), 특수효과 중심(24.6)이 과학기술과 관련된다는 응답(21.6%)을 앞질렀다.
한국의 SF 관객은 아직까지는 장르 자체보다는 단지 ‘재미’ 측면에서만 SF물을 대하는 셈이다. 박상준 한국SF아카이브 대표는 “우리나라의 SF소비자들은 기술범주인 SFX와 SF 장르의 구분을 하지 않고 작품을 대하고 있으며, 거기다 스토리에 대한 눈높이는 해외 우수 작품에 맞춰져 있다”며 “이들이 쉽게 국산 콘텐츠를 만족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SF 이중고, 리얼리즘에 밀리고 과학기술과는 소통 부재=SF 장르는 과학기술 이미지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철 ㈜로보트태권브이 대표는 “일본에서 아톰이 나온 이후 과학자에 대한 지망도가 높아졌으며 국내에서도 태권브이 이후 아이들 꿈에 ‘과학자’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과학에 대한 ‘꿈’이라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당시 SF 애니메이션의 역할은 중요한 기폭제였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SF 장르와 과학 간의 의사 소통은 힘들다. 우선 SF 장르는 문화 부분에서도 ‘B’급 장르 내지는 유치한 분야로 여겨진다. 과학저술가 이은희씨는 “SF는 일부 마니아 또는 청소년들이나 좋아하는 장르라는 인식과 허황된 이야기라는 통념이 강하다”고 말했다. 과학 교육에서도 그렇다.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 설명과 수학 위주의 논리 교육에 머무르고 있다. 이은희씨는 “잘 구성된 SF 한 편은 직접적인 교습보다 훨씬 더 큰 파급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히 이용한다면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기획팀=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 김규태·한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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