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게임 종주국 단상

 삼성전자가 노키아의 휴대폰을 위탁받아 재가공해 팔고 LG전자가 소니의 TV를 수입해 판다면 어떨까. 말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출발은 늦었지만 우리가 그 산업을 경쟁력 있고 부가성 큰 산업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온라인게임의 현실에서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을 자부하는 우리 게임업계가 ‘게임IP’로 불리는 외산 게임(PC·콘솔용) 원작 판권을 사서 새로이 온라인화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참여기업 면면을 보면 히트대작 가뭄에 시달려온 선발 게임개발사가 제법 보인다. 이 때문에 외산게임 원작을 이용한 개발이나 외산게임 퍼블리싱(유통배급)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다. EA와 제휴한 네오위즈게임즈가 EA의 ‘피파’를 온라인화한 ‘피파온라인’(축구)을, 카트라이더의 넥슨이 미국 밸브사의 카운터스트라이크(FPS)를 온라인게임으로 새로이 해석해 서비스하고 있다. 여기에 NHN의 한게임·네오위즈·한빛소프트·CJ인터넷의 넷마블 등은 특히 외산게임 퍼블리싱에 발벗고 나서는 모양새다. NHN은 올해 들어 게임 판권의 블랙홀로 등장했다.

 어쩌면 지금 토종 한국산 온라인게임업체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른바 메이저 퍼블리셔의 눈에 토종 게임개발자의 성과물이 눈에 찰 것인가. 토종 게임업체는 성과물을 가지고 힘겹게 자체 서비스를 하든지 외산 원작 기반 제품과 경쟁하든지 해야 할 상황이다. 이것이 지속되면 토종 온라인게임이 외산에 종속되면서 끌려다니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외산게임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스타크래프트’ 효과를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게임업계도 외산 원작을 이용한 게임 개발과 외산게임 퍼블리싱에 맛들이는 게 제살 깎아먹기임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사실 업계 사람도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알고 있다. 국내업체 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는 점이다. 시장에는 그게 그것인 천편일률적인 게임이 쏟아진다. 잘나간다는 게임이 하나 나오면 그 아류가 10여 종은 나온다. 게이머는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히트게임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게임업계 종사자의 실토다. 최근 몇년간 대한민국 게임대상 경선작 게임의 유사성은 이미 심사위원을 충분히 놀라게 해왔다.

 이렇다 보니 게임퍼블리셔는 단독으로 외국업체와 원작 판권 확보로 재개발이나 단독 퍼블리싱으로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이들도 이왕이면 검증된 게임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해외에서 유명세가 높은 개발자의 게임, 혹은 PC게임으로 고정 수요층이 확보된 게임을 확보해 온라인 버전으로 만들게 된다. 온라인게임 종주국을 자부하던 한국 온라인게임산업 사람도 ‘온라인게임의 위기’라는 자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일본 게임업체가 언제 PC아케이드게임 콘솔에서 인기를 끈 게임 원작을 온라인화해 우리에게 도전해 올지 알 수 없다.

 외국 게임 원작 확보 돌풍은 이야기 작가와 게임기획자에 대한 신뢰감, 혹은 자신감 부재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 게임업계가 스토리텔링을 중시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산업을 바라보고 게임을 발굴하면 게임업계는 지금까지의 역량을 배가해 세계를 향해 더욱 힘차게 내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재구 콘텐츠팀장@전자신문,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