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LG의 선택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의 품에 안기는 게 기정 사실화된 이 마당에 새삼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LG그룹은 왜 하나로 인수전에서 밀렸을까. 하나로의 인수가 그룹 통신사업의 사활이 걸렸다고 판단했는데도 그냥 보고만 있었을까.

 LG의 고민을 들여다 보려면 통신시장 안팍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가지 상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당국이 최근 쏟아내는 통신정책이 모두 LG에 좋지 않은 것들이다. 지배적 통신사업자의 재판매 상한선이 철폐되고 요금인가제가 없어지며, 유무선·인터넷 결합상품이 허용됐다. 이런 규제 완화가 통신시장을 KT와 SKT 중심으로 몰아가게 한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LG가 3G 이동통신이나 통신·융합 전략 등에 너무 안일하게 대비해왔다는 점도 그렇다. 동기식 3G사업자였던 LG텔레콤이 지난해 사업권(주파수)을 반납한 것을 두고 당시로서는 어쩔수 없었다는 상황론이 우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착이다. LG는 당시 2G 대역에서 3G 일종인 리비전A를 구현하면 1조원에 가까운 주파수 점용료를 ‘세이브’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이런 셈법은 리비전A 가입자를 고유번호(019)가 아닌, 통합번호(010)로 해야 한다는 정통부의 결정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LG가 통신분야에서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콤플렉스’도 빼놓을 수 없다. LGT(이동통신)·LG파워콤(초고속인터넷)·LG데이콤(유선전화·IPTV)은 모두 2위와도 적지않은 차이가 나는 3위사업자다. 3G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터넷포털·와이브로·IPTV·DMB는 아예 없거나 보잘것 없는 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곧장 총량 가입자수에서도 절대 열세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LG가 1조∼2조원을 들여 하나로를 인수했을 때 얻는 이득은 뭘까. 두 접시의 무게가 균형을 유지한 천칭 저울에서 기울기를 결정하는 것은 깃털 하나만으로 족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LG에게 하나로의 가치는 깃털의 무게만도 못할 수 있다. 하나로는 SKT나 KT의 품으로 갔을 때 힘을 발휘할 수있지만 LG에 안겼을 때는 별개다. 하나로가 초고속인터넷과 시내전화 2위사업자라지만 LG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파워콤과 데이콤의 시장 리스크를 줄여주는 정도이다. 그것도 경영권 인수가 아닌, 합병이라는 화학적 결합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매쿼리나 칼라일과 같은 외국자본을 등에 없고 인수전에 나선 것 역시 하나로가 다른 사업자에 넘어가는 것 만은 막아보자는 정도의 소극적 자세였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 LG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3가지 정도로 압축해볼 수 있겠다. 우선 LGT·데이콤·파워콤을 합병해 조직 효율성을 높인 다음 중장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합병시 임금과 업무조정·노사문제 해결이 기업 인수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선택할 방안은 못된다. 하나로의 인수도 이런 점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강1약으로 전락하기 전에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는 방안도 있겠지만, 이 역시 녹록해보이는 선택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현재의 2강1중 구도를 최대한 유지해 나가는 방안이다. 이런 관측은 SKT 측에 800㎒주파수 로밍을 간절하게 요청하는 것에서도 읽혀진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LGT는 추가 투자없이도 통화품질이나 서비스 지역 취약 문제·국제로밍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요청은 2011년 800㎒ 대역 반환을 앞둔 SKT입장에서도 전략적 활용가치가 많아 비교적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되면 LG는 한때 리비전A 서비스를 검토했던 SKT와 3G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관계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서현진 부국장대우·정책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