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블리자드의 속내

[데스크라인]블리자드의 속내

 해마다 연말이면 대한민국 게임대상작이 정해진다. 최고의 게임과 개발자가 선정되면서 게임업계의 한 해가 저문다. 올 연말은 바다이야기 후유증으로 침울했던 지난해와는 좀 다를 것 같다. 내수가 아니라 수출로써 제법 큰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올해를 기점으로 줄줄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내년 게임업계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마냥 그런 낙관 속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데 일말의 안타까움이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키웠다고 해도 좋은 스타크래프트(스타크) 개발사인 미국 블리자드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미 블리자드코리아가 방송국과 스타크를 이용한 e스포츠 관련 로열티 문제를 물밑 협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엔 스타크2를 직접 퍼블리싱(유통·배급)할 예정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지난 5월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스타크2의 맛보기 공연 격인 ‘2007 WWI’에서 감지됐다. 마크 모하임 블리자드 CEO가 “한국은 스타크의 성지”라고 추켜 세웠지만 전 임원을 총출동시킬 정도의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터다. 기자들이 스타크2의 유통시점·저작권 부과 계획 등의 질문을 꺼냈었다. 그는 두 질문 모두 비껴 갔다.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서태지식 신비주의로 모르는 척 넘어갔다. 블리자드는 6개월 만에 내년도 한국 게임산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를 지필 불씨를 안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스타크 등 자사의 게임을 이용한 e스포츠 중계와 PC방 등의 지재권 주장 등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을 앞두고 블리자드는 드디어 칼을 꺼내 들었다.

 시장이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기업이 어디있으랴. 자신의 권리를 찾아 사업을 하겠다는데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스타크 게이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이유를 알고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스타크는 98년 4월 이후 10년간 한국에서만 무려 400만카피 이상 팔렸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여기에 빠져든 게이머로 구성된 시장과 PC방 그리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한 퍼블리셔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한국의 게이머는 연매출 15억달러 규모인 블리자드의 오늘이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최근 블리자드가 한국시장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런 빛과 환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갑자기 흐리고 음습한 모습으로 돼있다. 이쯤에서 스타크에 환호해 온 한국의 게이머도 블리자드의 속내 정도는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알아보니 올 한 해 치러진 e스포츠 행사 42개 중 스타크를 채택한 경기는 무려 22개에 이른다. 스타크 등장 10년째지만 대한민국 어느 PC게임방에서든 스타크는 여전히 3위권 이내에 드는 강세다. 한국에 직접 진출하는 블리자드가 언론기피증까지 보이며 암행을 하는 속내를 읽을 만하다. 내년엔 우리나라의 모든 게임관계 종사자나 행사주최자의 어깨도 무거워질 법 하다. 지난 5월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07 WWI’에 운집한 관중을 보며 블리자드 CEO가 얼마나 뿌듯했을까.

 이를 생각하면 필요악이라고는 하나 개발의 한편으로 국내외 게임대작 유통권을 싹쓸이해 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대형 게임사의 모습이 지나치게 한가해 보인다. 언제 블리자드에 ‘한방’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게임업계는 내년에 치러지는 e스포츠에 한국산 게임을 몇 개나 올릴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재구콘텐츠팀장@전자신문,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