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성

 #올 한 해도 참으로 많은 뉴스가 쏟아졌다. 그 홍수 속에 파묻힌,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 적잖이 회자되면서 올해 최대 뉴스가 됐을 법한 뉴스를 생각해 본다. 단연 전남 담양의 열 여섯 살짜리 고교생의 이른바 ‘저작권 자살’ 건이 첫손가락에 꼽히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소설 한 편을 내려받았는데 경찰로부터 ‘저작권법 위반이니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받자 고민 끝에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당시 본지에서도 ‘법무법인의 횡포’라는 제목으로 취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저작권법위반에 대한 대원칙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인해 뉴스화하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새 이런 최악의 사태까지 발생하고 나니 취재 데스크로서도 당황스러웠다. 내용인즉슨 일부 법무법인이 지난 7월부터 개정된 저작권법상의 비친고죄 도입을 악용, 저작권자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60만∼70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법무법인에서는 이 못된 짓에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방송을 탄 이 내용은 일부 못된 어른의 얘기지만 어른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압박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괴롭힘을 받았을 것인가.

 #이런 법무법인의 횡포가 태풍처럼 많은 학생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후 저작권에 대한 여론이 환기되고 후속조치가 이어졌다.

 일례로 최근 저작권위원회가 주최하는 저작권체험학교는 모집 첫날 마감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내년에는 1200여 초·중·고교 교원 등을 대상으로 ‘수업시간이 즐거워지는 저작권 비밀노트’라는 주제의 원격 교원 직무 연수가 실시된다는 소식도 있다. 문화부와 저작권보호센터에서는 앞으로 4회에 걸쳐 이른바 특수 유형의 온라인서비스 유통자(OSP)를 대상으로 불법콘텐츠 필터링 조치 여부를 모니터한다. 문화부는 지난달 네이버·다음 등 주요 9개 포털사이트의 카페·클럽·블로그·미니홈피를 대상으로 음악 1만곡, 영화 1000편에 삭제·중단 명령권을 발동한 바 있고 상당히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P2P, 웹하드 등이 불법복제 영화·음악 등의 필터링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처벌 역시 가벼운 벌금형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안타까운 점은 왜 이렇게 수많은 학생을 공포에 몰아넣고 나서야 어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하는 점이다.

 #‘저작권 자살’은 못된 어른들이 저작권에 무지한 학생의 마음에 가한 극한적 테러였지만 국민 전체에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산업계의 저작권자에게도 많은 이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고, 어린 학생은 인터넷에서 ‘무심히’ 콘텐츠를 퍼주거나 퍼오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이다. 최근 문화부와 서울지검이 ‘저작권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제도’를 준비하면서도 저작권자의 눈치를 보고 선뜻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부차적인 피해사례가 아닐까.

 지난 7월 개정저작권법은 비친고죄를 도입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부 못된 법무법인이 발호할 빌미를 준 셈이 됐다. 하지만 이처럼 주로 어린학생들을 대상으로 해 ‘잡아들이는’법 만드는 데만 신경썼지 정작 교육을 하는 데는 그 누구도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인터넷에 수없이 떠있는 영화·소설·만화처럼 아이들에게 달콤한 유혹이 또 있을까. 저작권이 있더라도 그럴진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방치된 콘텐츠라면 더더욱이 그렇다.

 개정 저작권법과 함께 이후 진행된 현정부의 저작권 법 관련행정은 예방보다 처벌 위주였다. 그런 점에서 보건정책과도 비슷하다.

 ‘암에 걸리지 않게 식습관을 개선합시다’라는 대국민 캠페인을 하기보다 ‘암에 걸려도 수술비용을 정부가 해결해 드립니다’라는 방식이란 점에서. 이를 제대로 못챙긴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반성한다.

 이재구콘텐츠팀장@전자신문,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