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장이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으로 인해 유명해진 말이다. 빛의 입자론을 편 뉴턴은 로버트 후크라는 당시 영국왕립학술학회 소속 과학자에게 “색다를 게 없다”는 비판과 이론을 훔쳤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뉴턴은 반박 편지에 이 말을 담았다. 자신을 거인 위의 난쟁이로 낮췄지만 ‘색다를 게 없다면 위대한 선대 학자들의 영향을 입은 때문이지 당신같은 과학자 덕분이 아니다’는 비아냥이 배어나온다. 뉴턴이 처음 한 말도 아니다. 성서 누가복음의 주인공 ‘누가’부터 십수세기에 걸쳐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비슷한 말이 있었다.

 뉴턴이 정말 키가 작은 후크를 조롱했는지 누가 처음 한 말인지 중요하지 않다. 과학자들이 이 말을 신조로 삼았다는 게 중요하다. ‘과학은 과거나 현재 다른 과학자의 노력을 밑거름 삼아 발전한다’는 그런 믿음이다. 비록 하찮은 연구일지라도 과학자는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네이버 지식인이나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이렇게 믿는 사람이 많다. 지식이 어설프든 깊든 “누군가 내가 올린 정보로 도움을 받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2월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기존 정부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나쁜 유산만 물려받는 게 아니다. 참여정부는 ‘돈 선거’를 없앴고 정부 업무 프로세스도 바꿔놓았다. 이런 유산 위에 경제 성장과 활력이라는 새 옷을 입히는 게 이명박 정부의 과제다. 다행히 이명박 당선자는 “(참여정부가) 한 게 모두 잘못됐다는 선입견을 버려라”라고 당부했다.

 정부에 기업은 거인이다. 세수를 늘려줬고 고용도 창출했다. 이런 기업에 정부가 군림해선 희망이 없다. 정부는 되레 기업을 위한 거인이 돼야 한다. ‘섬기는’ 정책을 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약속에 기업인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기업도 정부의 권유가 없더라도 스스로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오늘이 오로지 임직원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국산품을 사랑한 소비자가 없었다면 두 기업은 결코 저 먼 글로벌 시장도 볼 수 없었다. 국민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창출을 원한다. 때마침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의 가치가 떨어졌다. 베트남·인도와 같이 인건비가 더 싼 곳을 찾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정부 정책만 뒷받침된다면 해외로 옮긴 생산기지를 되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통신사업자는 지하와 산골까지 구축한 네트워크와 저렴한 요금으로 IT강국을 이룬 주역이다. 그런데 이들을 보는 소비자의 눈길은 여전히 차갑다. ‘외국보다 요금이 비싸고 내수로만 살지운다’는 왜곡된 사실을 믿는 소비자에게 더 이상 서운해하지 말자. 지금까지 해온 대로 경쟁을 통해 요금을 낮추고 저 멀리 해외 시장도 개척하면 소비자는 기꺼이 거인 노릇을 계속할 것이다.

 협력 업체라는 또 다른 거인이 있다. 대기업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살아남기까지 수많은 협력업체의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다.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거나 단 하나라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선례를 대기업이 만들어야 한다. 대형 포털 역시 예외는 아니다.

 IT산업에는 전통산업이라는 거인이 있다. 전통산업이 고르게 발전해야 IT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 섬유산업이 위기라고 하나 하기에 따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바꿀 수 있다. 전통산업에 IT와 창조의 옷을 입혀 거인으로 키워야 IT산업도 산다.

 정치인이든 관료든 CEO든 새해를 맞아 스스로 디딘 발을 내려다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누가 나의 거인이며 고마움을 얼마나 표시했는가. 이를 알아야만 연말에, 5년, 10년, 20년 뒤에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신화수팀장@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