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얘기로 한번 돌아가보자. 천하재패의 꿈을 가진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누추한 집을 세 번씩이나 찾았다. 이른바 삼고초려(三顧草廬)다. 유비는 그만큼 자신의 꿈을 펼쳐줄 유능한 인재를 초빙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했다.
재목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졌으며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진심어린 예도 갖췄으며 인내심도 발휘했다. 오죽하면 제갈량을 얻고 난 뒤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했겠는가. 삼고초려는 그래서 현대 정치인들이 가장 즐겨쓰는 고사성어가 됐다.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 초면 정부 조직개편 절차가 끝날 듯하다. 물론 통과의례가 남아 있기는 하다. 이 와중에 정통부는 완전히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과기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정통부는 IT 일등국가를 일구며 십수년을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을 이끈 끝에 5개 부처로 제 기능을 나눠주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다.
아쉬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시대, 기술융합시대, 디지털경제사회, 미래 정보문명을 앞장서 개척해 나갈 미래 부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IT분야 인재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감돌고 있다. 능력있는 기존 전문 관료, IT 인재마저 찢길 운명이고 이들중 상당수는 한직으로 내몰릴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토목 인재가 각광받을 수는 있겠지만 IT 인재는 아예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본질적 특성이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개편의 의미를 경제·행정·문화 부처들이 디지털시대의 IT 인재들을 모셔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모셔가는 형식이 고약하기는 하지만 십수년간 IT 분야에서 커온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모든 게 기우일 것이다. 인수위측 표현대로 IT가 이제 모든 산업·문화·사회에 스며드는 시대인 만큼 이를 소화할 전문가를 한꺼번에 뚝뚝 잘라 배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MB(이명박) 주변에 IT 인재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행정 전문가나 교수, 정치인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국가 차기 성장동력을 주무르던 전문가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나돌고 있는 장관 하마평 역시 마찬가지다. 온통 ‘그의 사람’들 일색이다. 정치인에서부터 전직 관료, 교수 등 모두 정치적 역학관계에 있는 그 얼굴이 그 얼굴들이다.
당연할 것이다. 정치의 속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의 주변, 특히 정치적 역학관계에 있는 한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을 무시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번쯤 유비의 정치학을 음미해볼 만하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나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유비의 정치적 통찰력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신을 버림으로써 또다른 가신을 얻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이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권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재와 치국을 할 수 있는 인재는 분명 구별해야 할 것이다. 논공행상은 이제 먼 나라의 일로 치부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 당선인의 정치 철학과도 배치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때를 기다리는 숨은 인재들이 많다. 이제는 그런 큰 뜻을 품은 초야의 유능한 인재들을 귀하게 초빙해야 할 차례다. 진심으로 MB의 정치철학을 펼칠 수 있는 그런 산·학·관 각 분야의 제갈량을 위해 삼고초려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인사가 만사다. YS정권 때도 그랬고, DJ정권 때도 늘 그랬다. 진정한 위정자는 사람을 볼 줄 알고 올바르게 쓸 수 있는 사람이다. MB시대의 키워드는 그래서 다시 신(新)삼고초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