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눈먼 돈을 없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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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닷컴 붐이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1999년, 2000년 당시엔 그럴듯한 사업계획서만 있으면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투자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물주만 잘 만나면 자사가 소개된 신문만 복사해 가도 그 자리에서 수백억원의 투자 유치가 결정되기도 했다. 전해 들은 이야기기 때문에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당시 돌아가는 상황을 놓고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눈먼 돈은 민간뿐 아니라 정부 쪽에도 있었다. 얼마 전 활동을 마치고 해산한 인수위가 지적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보증은 예산낭비의 대표적인 예다. 인수위는 기술보증기금(당시 기술신용보증기금)이 P-CBO 보증의 부도율을 과도하게 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2005년 5월 기준으로 8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고 앞으로도 1조원 규모의 추가 부실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P-CBO뿐만 아니라 일부 연구개발(R&D) 지원자금이나 시범·선도사업 등도 자유롭지 못하다.

 당시 민간의 ‘묻지마’식 투자를 받거나 정부의 온실 정책 속에 자란 기업은 대부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냉엄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자생력이 없는 기업은 거의 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건재한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30년간 제조업 한 우물만 고집해 어엿한 중견회사로 자리 잡은 P업체의 대표는 “정책자금을 받아 회사를 꾸려왔다면 (우리 회사는) 이미 망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외부 강의 자리에 서면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함부로 창업하려 하지 말고 이미 창업한 사람들에겐 정부 지원 자금을 받아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리라고 강조한다. 자생력 없이 정부 지원 자금을 구걸해 운영하는 정부지원 전문업체(?)로는 치열하게 돌아가는 경쟁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예산을 배고프면 찾는 엄마의 젖줄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 여러 가지 지원을 받더라도 지식재산권(IP) 경쟁력 없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기업이 자금신청을 한다 해서 여기저기에 막 퍼주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지원해야 할 업체는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 특허를 보유한 기업, 사업화 성공률이 높은 기업이다. 제대로 된 평가를 거쳐 되겠다 싶은 기업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정해진 예산으로 많은 기업에 수혜가 돌아가도록 하는 기존의 지원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순간적으로 갈증을 풀어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지원하는 수천·수조원의 예산은 쏟아부은 만큼 낭비다. 산업기술이나 국가경쟁력 제고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부 지원 예산을 눈먼 돈쯤으로 생각하는 기업들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방법은 있다. 기업이 보유한 특허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다. 엄격한 평가로 정부 지원을 받는 기업을 추적해 사후관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기존의 평가 체계를 허무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도 필요하다. 기업의 기술이나 특허 평가에 참여한 평가위원들도 지원 기업의 사업 성과에 따라 책임을 지게 하는 ‘서바이벌리즘’을 도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문정 <디지털산업부 차장>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