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명박 정부, 각론 있나 없나

 국민은 변화와 발전을 갈망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의 주인공 이명박 후보를 변화와 발전을 이끌 지도자로 지목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발전의 상징이다. 청계천 복개는 배고픔을 이기기위해 희생한 아픔이었다. 잘 살아 보자는 개발과 성장의 염원이 청계천의 아름다움보다 컸다. 어언 40여 년이 지났다. 배고픔보다, 잘살아 보자는 염원보다 ‘잘∼살아보자’는 생각이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국민은 개발과 성장이 아닌 변화와 혁신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도 변화와 혁신의 산물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변화와 혁신의 물꼬를 발전이 아닌 복지로 잡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국민은 복지보다 발전을 더 원했다. 복지 대신 발전을 내건 이명박 후보가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여가 지났다. 첫 작품은 정부조직 개편이었다. 구 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겠다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구시대 청산을 제1 국정과제로 삼았던 노무현 정부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짧다. 특히 변화를 실감하기에는 너무 짧다. 정부조직이 바뀌었지만 무엇이 변화하는 지 느끼기엔 턱 부족이다. 그래도 실망스럽다. 총론은 그럴싸했지만 각론이 너무 빈약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 비서진은 각론을 준비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렵사리 청문회를 통과한 정부 각료들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거대한 바람 앞에 등불신세인 공무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우왕좌왕할 뿐이다. 정부의 손과 발이 되어줄 산하기관들은 공무원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되어 가는게 없다 싶다. 기존 정책은 올 스톱 상태다.

 그래서일까. 지난 한 달간은 온통 대통령의 호통과 질책만 난무했다. 새정부 살림을 꾸려갈 부처 업무보고가 대부분 호통의 장이 돼 버렸다. 오랜동안 구시대 관습에 젖은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생각대로 움직여줄 리 없다. 업무보고 내용이 대통령의 생각과 비전을 만족시킬리 만무하다.

 노무현 정권도 총론이 나빠서가 아니라, 각론이 빈약해서 실패했다. 대통령이 빈약한 각론을 남발하는 바람에 문제만 악화시켰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금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지난 28일 하이닉스를 삼성에 인수토록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 받게한 ‘반도체 발언’이 예다. 삼성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건 글로벌 시장에서 크나큰 모험으로 결론 난 지 오래다. 한반도 대운하도 마찬가지다.

 변화와 혁신은 구호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민간기업들도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각론이 필요하다. 각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컨설팅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거창한 총론이 아니라 세련된 각론이다. 충분한 워밍업이다.

호통과 질책은 그 다음에도 늦지 않다.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는 개발독재에서나 가능했다. 국민은 이제 배고픔만 해결해준다면 원이 없다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질 좋은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노대통령과 달리 이 대통령 주변에는 노련한 싱크탱크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