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과속은 화를 부른다

 공기업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요즘 뒤숭숭하다. 기관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을 상황이다. 금융기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은 통폐합까지 사정권으로 다가왔다. 수장이 바뀌고, 다른 기관과 합쳐질 지경이니 임직원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했다. 유인촌 장관이 “지난 정권과 코드를 맞춘 인사는 스스로 물러나라”고 일갈한 이후 한 달여 만의 일이다. 정 사장의 해직은 이명박정부가 총선 이후로 예정한 기관장 교체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인사 폭풍은 전 부처로 확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 수장들의 사표 제출과 사의 표명도 잇따랐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의 민간 위원 3명을 교체했다. 임기를 다한 위원을 바꾼 것이기는 하나 정부의 공공기관 운영 방향의 대폭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빈 기관장 자리는 이명박정부에 맞는 새 인물이 차지할 것이다. 참여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코드인사’니 ‘낙하산인사’니 ‘논공행상’이니 비판이 벌써부터 들끓었다.

 그런데 대통령제 아래 ‘코드인사’는 당연하다. 장차관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과 밀접한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수장은 정부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적임자를 배치했는지가 문제지 ‘코드인사’ 자체를 뭐라고 나무랄 것은 아니다.

 기업에서 대표가 바뀌면 임원이 일괄사표를 내는 게 일종의 관행이다. 대표의 인사권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민간 CEO 출신인 대통령이나 장관의 시각으로 보면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남은 임기를 채운다며 자리를 지키려는 기관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법이 특별한 하자나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장이 바뀌면서 생길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아무리 마땅찮은 인물이 기관장 자리를 꿰차고 있더라도, 그 인물이 계속 버티는 게 미울지라도, 이러한 법 취지만큼은 지켜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강제적인 사퇴 종용에 앞서 법·제도부터 고치려는 노력을 보였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았는가. 사퇴 압력 논란이 개운치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들려오는 얘기로 이명박정부는 기관장 교체를 늦어도 이달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신임 기관장 자리를 기업인과 같은 민간 출신이 차지할 가능성도 높다. 다음 수순은? 민영화와 통폐합이다. 실제로 정부는 상반기 내 시작을 목표로 민영화 작업에 착수했다. 각 정부부처는 산하 공기업의 민영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민영화가 쉽지 않은 공기업이라면 정부 지주회사를 만들어서라도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은 늘 문제였다. 민영화든 경영효율화든 통폐합이든, 어떤 형태라도 혁신이 필요하다. 다만, 그 이후까지 감안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기업은 기업에 빗대면 독점 기업이다. 한전이나, 여러 은행을 합친 메가뱅크가 갑자기 시장에 나오면 충격과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경쟁도 촉진해 국민 편익을 높이려면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기관장 교체나 민영화, 기관 통합 등을 보노라면 현 정부가 시간에 쫓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해진 임기 안에, 공공 영역을 민간 수준만큼 빨리 끌어올리고 싶은 대통령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공감한다. 그러나 과속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부른다. 바로 직전 정권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신화수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