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손바닥 위로 TV가 올라오는 등 대한민국은 방송·통신 선진국이다. 그러나 방송·통신 소비자는 어수룩해 이용해 먹기 좋은 ‘봉’ 취급을 받는다. 즐겨 보던 케이블TV 영화채널이 어느 날 갑자기 두 배 높아진 꾸러미(패키지) 상품으로 옮겨가더라도 그저 분을 삭여야만 하고, 4300만여 이동전화 가입자의 민원을 판단·처리하는 정부기관 인력은 4∼5명에 불과하다. 이제 선진 서비스 환경에 걸맞은 소비자 권익 보호체계를 확립할 때다.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소비자 편익을 중심에 세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롭게 지향할 목표이자 규제 기준이다. 소비자에 편리하고 유익한 것은 곧 기업이 살길로도 연결된다.
지역 종합유선방송 사업자 A는 채널을 개편하면서 영화, 스포츠 등 인기 채널을 ‘4400원짜리 꾸러미 상품’에서 ‘8800원짜리’로 옮겼다. 영화,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소비자로서는 100% 가격 인상을 체감하지만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월 1만5000원으로 정해둔 상한을 넘지 않는다면 100% 이상으로 가격이 높아진 꾸러미(패키지) 상품으로 인기 채널을 묶어내도 된다”며 “채널변경 사전 통보, 6개월 내 변경금지 등을 권유하고 있으나 과징금과 같은 형태로 규제할 수 있는 체계(방송법)는 없다”고 전했다.
그는 “시청자를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송사업자 영업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대등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방송법에 요금 자체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솜방망이 규제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 전가될 틈새가 열려있는 셈이다. 시청자가 직접 좋아하는 채널을 골라 묶어 구매하는 ‘채널 티어링’도 논의만 무성할 뿐 전면 도입이 요원하다는 게 방통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나마 통신서비스에는 과징금, 시정명령 등 징벌적 규제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나 ‘고객만족’까지는 아직 먼 길이다. 옛 통신위원회 산하 고객만족(CS)센터에 행정 주무관과 기능직 공무원이 각각 2∼3명씩 배치돼 1일 120여건, 매월 4000여건씩 민원을 판단·처리하는 등 물리적으로 소비자 권익을 제대로 보호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 말을 기준으로 △시내전화 2312만 △이동전화 4374만 △초고속 인터넷 1483만 등의 민원을 4∼5명이 응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분쟁을 촉발할 개연성이 있는 소비자 민원을 관련 사업자가 운영하는 고객관리센터에 이첩하거나 중계하는 데 그쳐 문제로 지적된다.
옛 정보통신부도 지난해 1월에야 통신위원회에 ‘이용자보호팀’을 만들고 민원 분류체계를 세분화하는 등 상대적으로 소비자 편익에 소원했던 측면이 있다.
새롭게 출범한 방통위 이용자네트워크국 ‘통신이용자보호과’와 ‘시청자권익증진과’의 협력 여부도 주목거리다. 방송통신 융합의 바로미터기 때문이다.
정통부 출신인 주종옥 시청자권익증진과장은 “아직 관련 서류를 (옛 방송위에서) 넘겨받지 못했고 이달 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방송위 출신 관계자도 “방송과 통신 민원 관련 업무 통합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성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방송통신 분야 분위기(융합)가 달라져 소비자 권익 관련 업무도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흐름을 탈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용기자 e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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