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제조사들은 다양한 스윙폼을 구사하는 골프로봇을 신형 골프채 연구개발에 쓰고 있다. 타수를 줄이려고 골퍼의 동작을 낱낱이 분석하는 센서기술도 상용화된 지 오래됐다. 골프로봇과 스윙분석기술을 합치면 골퍼의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하는 로봇팔이 나온다.
만약 골프장에 있는 로봇이 원격지에 있는 골퍼의 스윙자세와 그립각도, 힘을 정확히 반영해 골프채를 휘두른다고 가정해보자. 로봇이 친 공은 그 사람이 직접 날린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로봇이 골퍼의 분신이 돼 골프를 치는 셈이다.
서울의 스크린골프방에서 VR가 아닌 태평양 건너의 미국 골프장으로 공을 날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로봇)이 미국에서 친 골프공은 실시간 중계로 서울의 골프방 스크린에 비춰진다. 다음 타격지점까지 이동한 후 로봇은 방향을 재조정하고 골프채를 다시 휘두른다.
스크린골프와 원격로봇을 접목시킨 게임모델은 실제로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수를 직접 체험하기 때문에 실력향상에 큰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진 골프장에서 자기 실력으로 공을 칠 수 있다는 정서적 만족감은 스크린골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골프장에서 로봇골프를 하려면 준비과정도 번거롭고 그린피도 크게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페블비치에서 호쾌한 드라이브샷을 날려서 태평양에 풍덩 빠뜨릴 수 있다면 한 타에 1만원이라도 치를 부유층 골퍼는 이 땅에 차고 넘친다. 기존 골프장도 로봇기반의 원격골프는 새로운 수익원이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먼 곳에서도 직접 골프를 즐기려는 수요만 있으면 상용화는 어떻게든 추진되게 마련이다.
로봇전문가들은 사람과 로봇(골퍼)이 나란히 필드를 거니는 로봇골프가 2010년대 중반까지 가능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는 그동안 로봇을 힘든 일을 대신하는 기계로만 생각했다. 이제는 로봇이 스크린골프를 비롯한 V스포츠의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상상도 해봐야 한다. 스크린골프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배일한기자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