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업계가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98년 하반기부터 1999년 말까지 이른바 ‘벤처 붐’이 일면서 각광을 받던 벤처캐피털의 고유 업무영역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6일 입법예고된 자본시장통합법(일명 자통법) 시행령 제43조에 따르면 금융투자회사는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부터 증권인수, 인수합병 시 자금대출, 지급보증 업무 외에 창투사, 신기술금융사, 기업구조조정투자(CRC) 등 해당 관련 부처에서 인·허가를 받거나 등록을 하고 벤처금융 업무도 할 수 있게 됐다.
한국벤터캐피탈협회 벤처투자정보센터에 따르면 올 3월 기준으로 등록된 창업투자회사 수는 98개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100개 이하로 떨어졌다. 2000년 147개를 정점으로 2001년 145개, 2002년 128개로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2005년에는 102개로 추락하고 지난해는 101개로 간신히 100개 선을 턱걸이했다.
이같이 벤처캐피털 수가 줄어드는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벤처캐피털의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지적과 자통법 시행에 대비해 이 시장의 매력을 잃어버린 벤처캐피털들이 떠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교차한다.
실제로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은 자통법이 집합투자회사는 창투업 겸업을 허용하는 반면에 창투사는 투자의무비율 등을 통해 규제를 받게 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도용환 벤처캐피탈협회장은 “지금 상태에서 자통법을 시행하는 것은 손발을 묶어 놓고 증권사들과 싸우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벤처캐피털은 기술은 갖고 있으나 자금 부족으로 창업이 어려운 기업들에는 단비와 같은 존재다. 창업을 하려면 담보나 그간의 거래실적이 있을 리 없는 창업자들은 막막할 뿐이다. 이에 벤처캐피털은 자금뿐 아니라 경영자 채용에서부터 기업의 미래 정책 등 창업자와 기업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한다.
창업자는 벤처캐피털을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절반의 성공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MS와 AOL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킨 미국의 유명 벤처투자가 루산 퀸들린은 그의 저서 ‘어느 벤처투자가의 고백’에서 “벤처투자가를 유능한 리더로 이용하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창업초기부터 시장상황 및 기술 평가를 거쳐 성장 가능성이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능력을 가진 벤처캐피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는 지난 15일 발간한 한국경제 심층보고서 ‘South Korea: Reaching Higher’에서, 한국이 7가지 주요 정책부문에서 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가게 된다면 향후 5년간 평균 5.5% 그리고 30년간은 평균 4.3%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는 정책 대응의 한 가지로 규제 완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기업가 정신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성장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본조달을 지원하기 위한 벤처캐피털 산업을 발전시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벤처캐피털 업계는 위기 타개를 위해 연기금 풀을 이용한 민간 모태펀드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로 연기금 풀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3일 중소기업주간을 맞아 열린 중소기업인대회 치사에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야기한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중소기업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무쪼록 중기 르네상스를 열겠다고 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벤처나 벤처캐피털이 소외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홍승모부장 sm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