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삼성전자가 이윤우 부회장 체제로 전환했다는 소식에 놀랐다. 그가 속된 말로 ‘깜’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경영, 특히 글로벌 경영 능력이야 오래전에 검증을 받은 터다. 윤종용 상임 고문이 ‘장수’하면서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 부회장을 윤 고문과 같이 갈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느덧 ‘윤종용 체제’에 익숙해졌다.
12년만에 등장한 최고 수장의 첫 과제는 따라서 조직 안정이다. 이건희 회장, 이학수 실장에, 윤 고문까지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동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해체한 그룹 전략기획실의 기능도 떠맡아야 한다. 새로 임명한 경영진과 함께 하루빨리 조직을 안정화하는 게 이 부회장의 숙제다.
이윤우 체제를 과도체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재용 전무는 최고고객책임자(CCO)직을 물러나 해외 근무를 떠난다.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 지 모르겠지만 돌아올 것만은 분명하다. 그 사이, 후계 체제를 마련하는 게 이윤우 부회장의 또다른 임무다.
후계 체제 준비와 조직 안정화만 제대로 해도 이윤우 체제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과도체제 관리’용으로만 쓰기엔 너무 아깝다.
이 총괄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론을 외쳤다. 창조적 발상은 개성과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비록 실패할지라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문화는 개인보다 조직이 강하다. 그나마 개성이 강한 김광호 전 부회장이나, 진대제 전 사장도 결국 발을 붙이지 못했다. 진짜 이유와 무관하게 삼성전자가 얼마나 개성이 숨쉬기 어려운 회사인지 방증한다. 조직 안정과 창조 경영이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과제를 동시에 이뤄내는 게 이 부회장의 과제다.
특검 이후 삼성전자의 대내 이미지는 곤두박질했다. 국민들이 더 이상 삼성 반도체와 휴대폰, LCD에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 한미 FTA를 긍정적으로 보던 국민의 시각도 이젠 “삼성전자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왜 우리가 광우병 소고기를 먹어야 하느냐”라는 말로 바뀌었다. ‘존경받는 기업’의 자리를 되찾는 일은 지금까지 경영해온 이학수-윤종용-이윤우 라인의 몫이다. 홀로남은 이 부회장의 어깨가 무겁다.
삼성전자에 대한 협력업체의 경외심과 충성도도 한계에 도달했다. 끊임없는 공급단가 인하 압력 때문이다. 일년에 한두번 협상을 통해 결정한 단가를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노키아처럼 당장 되라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삼성전자를 위해 혁신한 협력사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할 정도는 돼야 한다. 이 부회장이 상생협력실을 신설한 목적도 이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윤우 체제의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녹록치 않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합종연횡으로 ‘타도 삼성’을 외친다. 대만과 중국 전자업체들 역시 힘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삼성 특검과 그 여진(餘震)의 틈을 파고 든다.
안팎의 악재를 딛고 일어나고, 체질도 바꾸며, 미래까지 준비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윤우 부회장이기에 기대를 건다. 누가 뭐라해도 맨땅에서 반도체 신화를 만든 사람이 아닌가. 글로벌 기술경영의 감각도 누구보다 뛰어나지 않은가. 그러니 이 부회장이여, 자신있게 제 색깔을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