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힘만으로는 안된다’

 올겨울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연말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3000원을 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제3의 ‘오일쇼크’가 닥쳐 올까 두렵기만 하다. 영세한 기업의 줄도산과 개인파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대량 실업….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최근에는 광우병 파동으로 밤마다 시내 중심가가 촛불로 채워지고 있다. 출연연구기관은 또 그들대로 안절부절, 노심초사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목전에 닥쳐 있는 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꼬일 대로 꼬여 있다. 매듭이 어디서 꼬였는지도 이젠 분별도 안 간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제각각이다.

 지금 대덕 특구에서는 KAIST와 생명공학연구원의 통합이 가장 큰 현안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연 협력의 모델로 보고 있지만 불행히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대화가 거의 없으니 진도가 나갈 리 없다. KAIST 측에서 읽어보면 아쉬울 것도 없고, 손해 갈 것도 없는 일이라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켜만 보면 되는 그런 인식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반면에 생명연은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연일 벌이는 피켓시위에 가두홍보전이 그것을 말해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모든 일이 멈춰 있다. 기관장마저 사표가 수리돼 떠난 마당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생명연 연구원이나 KAIST 교수 모두가 ‘대덕특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료였다. 서로 모여 워크숍도 했다. 매년 봄, 가을에는 과학기술인이라는 이름 아래 계룡산 산행도 함께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지경까지 만들었는가. KAIST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제공하던 등록금 수혜를 대폭 축소하면서 서울대와 후발 대학인 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을 비롯한 내년 개교 예정인 울산과기대(UNIST) 등으로부터 추격을 받아 왔다. 과거 과학기술부로부터 받던 독점적인 지위가 깨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일류로 가는 길은 멀고, 기술이전 건수나 SCI논문, 특허 및 기술료 수입 부문 실적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교수진은 400여명이지만, 연구비는 230명밖에 안 되는 포스텍과 큰 차이가 없다. 주변 환경이 KAIST를 개혁 물결의 가장 앞자리에 나서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힘을 키우고,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이다. 다른 기관의 흡수 통합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설득력이 빈약해 보인다. 다른 기관을 끌어안는 과정에서 파생될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덕특구의 한 연구원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 의지에는 동의하나 반대 의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현명한 역할을 다 했는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게 소통이지요. 정부 또한 30년 넘게 한국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출연연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해 봤을까요.”

 답은 하나다. 모두가 윈윈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힘으로 하는 무지막지한 방법은 서로 상처만 남긴다. 통합할 조건이 서로 성숙되면 저절로 일이 진행될 것이다. 특히 통합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 놓으면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합친다.

이미 감정이 서로 상할 대로 상해버린 두 기관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일을 이지경으로 만든 걸 보면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 가장 기본적인 일의 절차와 방법, 테크닉마저 모두 잊은 게 분명하다.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