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을 경유해 선전으로 들어선 길은 비 온 뒤의 습기로 거리에 아지랑이가 피어 올랐다. 200여미터만 걸어도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는 무더운 날씨는 밖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저 에어컨이 있는 빌딩이나 호텔을 찾게 했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거리에는 몇몇 사람만 오갈 뿐이다. 오늘이 몇 도나 되냐고 물으니, 26도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이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후텁지근함이 불쾌지수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주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개발특구 선전은 날씨와 같이 올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최고의 고임금 도시답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다. 작년 이맘때와 또 다른 모습이다.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선진 시민의식이 한층 고조된 것도 또 다른 선전의 모습일 게다. 폭설과 지진 등 대재앙과는 거리가 먼 듯, 퇴근 시간의 선전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하지만 같이 자리한 몇몇 사람의 표정에선 발전하는 선전을 찾아볼 수 없었다. 12년째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한 국내 중소기업 임원은 말을 꺼내기 전 한숨부터 지었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맞지만 기업하는 사람들로서는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살인적인 인플레와 노동시장 경색으로 선전은 이제 더이상 기업의 천국이 아니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는 선전의 발전과 기업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 베트남 등 인근 국가의 경제위기 등 외부 악재에 대비해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어디까지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심지어 지준율을 25%까지 올릴 것이라는 예측도 난무하고 있다. 자금경색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중국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공산당의 처방도 기업들에는 악재다. 국민의 불만이 높으면 공산당 체제 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발효된 인권법은 기업들에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인권법은 안정된 고용과 임금인상을 법제화한 신노동법을 포함하고 있다. 더이상 노동시장으로서 중국의 매력은 없는 셈이다. 선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둥관(東莞)에서 근무하는 국내 중소기업 사장은 “한국에 알려진 국내기업들의 철수는 전체적으로 볼 때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미 둥관을 포함해 광저우 지역 일대에서 1만5000개의 외국기업이 철수했으며 그 행렬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업경영 여건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미 전 세계 시장의 중심이 된 중국 시장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해소되고 다시 경기가 살아날 때를 대비해 어렵지만 참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지 한국 기업인들은 그 시기를 내년 말에서 내후년 초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예상이 얼마나 정확할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고진감래를 바라며 ‘뚝심’으로 버티는 한국 기업들이 무더운 선전의 날씨 속에서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밤 중국의 TV에서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이 화이팅을 의미하는 ‘자요’를 외치며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이경우부장@전자신문,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