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제대로 지르자

 지난 9일 정부가 환율 방어를 위해 하루 만에 무려 5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그 덕에 환율은 하루 27.8원이 하락했다. 환율정책에 실패하면 경제 전체가 망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의 극약처방도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날 정부의 처방을 두고 ‘잘했다’는 칭찬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지난 2003∼2004년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 사실을 상기하기에 바빴다. 외신은 “한국 정부의 결정은 인기를 염두에 둔 포퓰리즘적인 행동이었다”며 “이 같은 한국 정부의 개입이 환율을 끌어내릴지 장담할 수 없다”는 논평을 내놨다.

 환율은 중요하다.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결정하고 한국 경제의 근간인 수출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방어선을 지켜야 하고 총력 투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시적인 ‘지르기’가 막대한 자금으로 무장한 국제 금융시장을 이길 수 있을지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만인이 반대하고 우려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이번 환율시장 적극 개입도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여곡절 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어쨌든, 벌어진 일이고 잘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지르기’식 외환시장과 달리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은 하루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환율이 살아야 중소기업도 산다고 하면 반박할 말은 없지만, 정답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무리한 ‘지르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중소기업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인 게 아마도 수십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중소기업은 아직도 대부분 빈사상태다.

 빈사의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낙후된 기술력이다. 70년대 ‘인건비 따먹기’식은 이제 통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소기업이 아직도 이 방식을 따른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으면 다른 데서 구하면 되는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중소기업은 어렵다.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에 시달리는 것도 당연하다. ‘대기업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푸념은 어찌 보면 무능하다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독자적인 기술 없이 ‘상생’을 주장하는 것은 ‘구걸’에 가깝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당연히 독자적인 기술력이다. 정부가 나서 원천적인 산업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중소기업이 상용화하는 협업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초보단계다. 정부 지원금의 한계, 기술 유통의 벽, 접근성 등이 고달픈 중소기업에 멀게만 느껴진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하루 쏟아부은 돈이 산업기술 발전을 위해 1년 투입되는 돈과 비슷하다. 물론 비교의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1 대 365’의 정량적 비율이 초라한 산업기술 개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책이 산업의 전부일 수는 없지만 리더의 역할임은 분명하다. 지른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위해 외환시장처럼 한판 지르기나 해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외환담당자가 아닌 산업기술개발 담당자의 손에 거액이 쥐어져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감이 앞선다. 중소기업도 더이상 초라하지 않으려면 산업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존재가 곧 한국 산업계를 밑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우부장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