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나귀 메고 가는 방통위

 아버지와 아들이 나귀를 끌고 여행을 떠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귀를 두고 왜 걸어가냐며 미련하다고 수군거렸다. 아버지는 아들을 나귀 등에 태우고 갔다.

 사람들이 나귀를 타고 가는 아들을 향해 불효 자식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갔다. 그러자 어린 아들을 걷게 한다며 무정한 아비라 책망했다.

 어쩔 수 없이 부자는 나귀를 함께 타고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두 사람을 태우고 가게 된 나귀가 불쌍하다며 혀를 찼다. 생각다 못한 부자는 나귀를 어깨에 메고 갔다.

 ‘T링’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띵딩디딩딩∼’ 하며 흘러나오는 SK텔레콤의 T링은 가입자의 전화연결음 앞에 들리는 1.7초짜리 효과음 서비스다. 물론 원하는 가입자에 한해서다. 그런 T링이 ‘창의적 마케팅’이냐, 아니면 간접광고에 해당하는 ‘식별음’이냐의 논란에 휘말렸다.

 진원지는 방통위다. LG텔레콤이 ‘T링이 공정경쟁 질서를 훼손한다’며 ‘서비스를 금지해 달라’는 신고서를 방통위에 제출한데 대해 내부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부터다.

 방통위 실무진은 규제론을 들고 나왔다. T링이 간접광고인 식별음이기 때문에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하므로 서비스를 금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유효경쟁을 앞세운 규제론이다. T링이 사실상 식별번호만큼의 효력을 발휘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화할 것으로 본 것이다. 011이라는 시각적 식별번호가 사운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상임위원들의 견해는 달랐다. 여야 추천을 통해 방통위에 합류한 이들 상임위원들은 한결같이 T링을 창조적 마케팅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론의 편에 선 것이다.

 심지어 통신위 상임위원을 지낸 위원과 야당 몫 위원까지도 T링이 우선 소비자 이익을 저해했는지를 봐야 하는데 금전적 피해나 개인정보 유출 같은 피해가 없다면 오히려 권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개진했다.

 그러나 속내는 경쟁 활성화다. 이를 통해 통신비 인하 같은 정치적 목적도 염두에 뒀을 법하다. 요금제와는 달리 T링이 얼마나 요금 인하를 위한 경쟁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다양한 정책적 함의가 담겨 있음은 분명하다.

 논란을 의식한 탓일까. 규제 완화론에 가까운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방통위원장이 오히려 내부 이견이 있는 만큼 다음에 결론을 내리자고 정리했을 정도라고 했다.

 의아스럽기는 하지만 지난주엔 실무진도 상임위원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도 포착됐다. 위원들의 생각이 그런 듯 하니 더 이상 논쟁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상임위원간에도 이견이 있는 듯 하다가 돌아서고, 위원장도 어찌된 일인지 한번 보류한 뒤 이번에는 아예 준비사항 미비로 논의에 대한 결론을 뒤로 돌렸다.

 어디 T링 뿐이겠는가. 모든 산업정책에는 이해 당사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리게 되면 나귀를 끌고 가든, 타고 가든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귀를 메고 가는 상황이 생기는 법이다.

 통신정책은 타이밍이다. 나아가 미래지향적이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물론 소비자의 이익과 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해 한번쯤 더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규제론이든 규제 완화론이든 결론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해 당사자의 눈치만 보거나 정치적 이해 타산에 골몰해서야 되겠는가. 박승정 정보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