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춘추관 식객(食客)생활 9개월째다. 지난 겨울 노무현 정부 마지막에 춘추관 기자생활을 시작해, 이명박 정부의 ‘S라인’ ‘고소영’ ‘강부자’ ‘만사형통’ ‘광화문 촛불’ 그리고 ‘금강산’과 ‘독도’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9개월을 겪었다. 이 정부는 유행어를 양산하는 ‘유행어 정부’였고, 9개월 동안 밥보다 욕을 더 많이 먹은 ‘욕 정부’였다.
이명박 정부가 욕을 먹어도 마치 내가 잘못한 것 같았다. 춘추관에서 한 끼 2500원짜리 ‘짬밥’을 사먹는 죄로, 한솥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다. 나는 사람이 모질지 못해서, 적당히 멀고 적당히 가까워야 하는 출입처와 기자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젬병이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데, 가끔은 지나치거나, 가끔은 느슨해질 때가 많았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가족들이 모인 허심탄회한 저녁 자리에서 수도 없이 욕을 먹었다. 우익을 자처하는 아버지도, ‘경제만 좋으면 된다’는 어머니도 춘추관에서 기자생활을 하는 자식에게 이명박 정부 욕을 했다. 가끔 가족들이 모여 고기라도 굽는 자리가 되면 여지없이 ‘믿을 만하냐?’라고 물어왔다. 친구들은 더 심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는 ‘먹으면 죽는다’는 비분강개형부터 ‘정치적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분석가형’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대부분은 ‘믿었던 것보다는 못한다’였고 그중 절반 정도는 ‘한심한 참모진’을 질책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시각이 부족했고, 그 본질을 풀어서 설득하는 능력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고 했다. 술안주감으로 이 정부는 안성맞춤이었고, 그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죄 많은 사람이 되었다.
개가 사나웠나보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주막에 개가 사나우면 그 술집을 찾지 않고, 그러다 보면 술이 시어빠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술이 시어 터지다 보니 술을 찾는 사람은 점점 끊어진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술을 담갔고 술이 맛있게 익었는데, 사람이 찾지 않는다.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주막집 개가 문제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한동안 시끄러웠다. 기업인들에게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는 직통 전화번호를 주고, 전화를 걸면 대통령이 받겠다고 했다. 그만큼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이라고 해서 기쁘게 믿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사람들을 만난 기업인들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6개월 만에 목표를 잃은 것 같다고 했다. 혹자는 사람이 변했다고 했다. 기업인을 만나서 문제를 듣는 게 아니라, 기업인을 늘 설득하려 한다고 했다. IT와 과학기술을, 전자산업을 내팽개치더니 ‘굴뚝’산업에 매달리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30년을 이끌어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이끈 전자산업은 다른 산업과 컨버전스되는 종속적 존재로 인식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세계 7위권의 과학기술 강국으로 이끈 지도자도, 전자 정보통신 산업을 이끈 기업가의 목소리도 없었다. 그 자리를 ‘한 부류’의 사람들이 채웠다. 사람들은 나와 남, 자기 집과 남의 집,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 내 출신학교와 다른 출신학교, 내 캠프와 남의 캠프, 내 사람과 남의 사람으로 구분하기 좋아하는 ‘측근’이라고 했다.
기업인들이 이명박 사람을 만났다. 혁신, IT라는 말은 그들 사이에서 금기어가 됐다. IMF 때부터 기업을 이끈 혁신전문가, 20년 동안 세계 최고의 IT 강국을 이끈 전문가들은 할말이 없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배타적이었다. 손님이 하나 둘 끊겼다.
술이 아무리 맛있고 주인 인심이 넉넉해도 주막의 개가 독하면 사람이 찾지 않는다고 한다. 구맹주산, 오늘의 교훈이다.
김상룡 차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