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국시대 고사에 보면 여섯 가지 보물 중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꼽고 있다.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실제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제갈공명이 있었기에 촉나라를 세워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또 춘추전국시대 월왕 구천은 범려라는 인물이 곁에 있었기에 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다. 구천은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하고 나라를 잃자 범려와 함께 스스로 오왕의 말을 돌보는 일을 한다. 온갖 모욕을 당하며 17년간 와신상담한 끝에 전쟁에서 이겨 오나라 왕을 자결에 이르게 한다. 구천은 이 기간 동안 무수한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모두 범려의 지혜를 빌려 넘기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기관장 공모로 시끌시끌하다. 현재 공모가 진행되고 있는 곳만 모두 10곳이나 된다.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공모를 비롯해 산업기술연구회와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기관장 등 9곳이 3배수 단계를 지나 최종 후보 선정 과정만을 남겨두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 기관장 선정작업은 공모 자체를 취소하고, 재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10곳이 한꺼번에 공모를 진행하는 일은 출연연 사상 전례가 없다. 그만큼 과학기술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명망 있는 인물을 발굴하기 위해 ‘서치 커미티’를 가동, 훌륭한 인물을 찾아 추천도 했다고는 하지만 일부에서는 정부부처 입맛에 맞는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치 커미티’의 활동 자체가 공개되지 않은 탓도 있고, 줄서기의 폐해 탓도 있다. 얼마나 줄을 잘 섰는지가 당락을 좌우하는 관건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출연연에서는 몇 년째 기관평가에서 1등을 해도 기관장은 수시로 바뀌어 왔다. 그러한 결과물은 정부 책임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오고 방조해온 과학기술계도 예외일 수 없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은 공감하지만, 기관장 공모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크게 눈에 띄는 인물도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참여정부 때 유행하던 ‘교수 일색’이라는 말도 나오는 이유다.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 중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배치하는지가 국가나 기관 운영의 관건이라는 말이다.
범려와 관련한 중국 고사에는 이런 말도 있다. 중국 역사상 4대 미인 중의 한 명으로 통하는 서시와의 사이에 아들을 셋 뒀다고 한다(실제 책에는 두 명으로 나온다). 첫째는 고생하며 재물을 모아 돈 귀한 줄만 알고, 막내는 쓰기만을 즐기는 풍류아였다. 하루는 둘째가 살인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이에 범려는 막내에게 천금을 주며 구명운동을 하라고 이르자, 첫째가 장자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이에 할 수 없이 다시 천금을 첫째에게 주며 유명한 거간꾼에게 돈을 모두 가져다 주되 석방이 마무리될 때까지 찾아가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얼마 뒤 사면설이 돌자 돈을 아깝게 여긴 첫째는 다시 그 거간꾼을 찾아가고, 거간꾼은 ‘올 줄 알았다’며 돈을 돌려준다. 결국 사면은 취소되고, 첫째는 천금과 함께 동생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은 각기 그릇이 있고, 쓰임새가 있기에 이를 잘 간파하고 적재적소에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