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君君臣臣父父子子

[데스크라인]君君臣臣父父子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는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가 대답한 내용으로 논어의 안연 편에 나오는 말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각자가 제노릇 똑바로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뜻이다.

 경공은 이 말을 받아 “만일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얻어 먹을 수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제구실 못하면서 밥숟가락을 들지는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정부산하 공기관들은 1, 2차에 걸친 정부의 선진화 방안 발표로 납작 엎드려 있다. 눈치만 보고 있는 형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출연연구기관은 연일 계속되는 고강도 감사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감사 자료제출을 받은 연구원들은 세세한 주문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표적 감사설도 나돌고 있는 배경이다.

 한때 국가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며 국가과학자로 지정한 K 박사를 보면 할 말을 잃게 한다. 그의 연구결과 발표 이후 실험실은 정치인, 공무원은 물론이고 장관까지 들렀다가는 정례적인 투어코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실험 대신 감사자료를 작성하는 사무실로 전락했다. 연구과제 회계처리 과정에서 몇 가지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일밖에 모르던 순진한 K 박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하다 출연연을 떠날 결심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에서 치고 올라오며 연구실적을 앞다퉈 내고 있는 글로벌 경쟁 현장에서, 고생한다고 찾아와 격려와 위안을 해줘도 그 시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를 판인데, 이렇게 발목이 잡혀서야 과학기술 1등 국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감사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K 박사 주변 연구원의 말이다.

 최근 감사원 개원 60주년 행사에서 감사원장 직무대행은 “감사원이 강도 높은 감사를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개혁과 경영혁신을 지원하고, 공기업 개혁에 필요한 공감대를 이끌고 공직사회 안정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과학기술계 시각과는 한참 차이가 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실험실의 배양균을 시도 때도 없이 날을 새워 관찰하고 실험하는 연구자들에게 차량 홀짝제도 얄미운 정책이다. 시간에 쫓기는 일부 연구원들은 외국 학술지 논문 등록마감과 야근을 모두 자기 차량 번호의 홀짝 날에 맞추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과학기술자들마저도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과학기술계가 이같이 휘둘리는 것은 정부 정책의 구심점, 즉 출연연의 컨트롤타워가 정권 창출 때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제에 정부출연구기관을 대통령직속기구로 법제화해, 독립기구로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정부와 지경부·교과부 등 관련 정책입안자들을 청와대로 파견하고, 출연연에서도 정책전문가들을 청와대로 파견 보내는 방식이다.

 과학기술 없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에 이른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정부든 국민이든, 누구든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룰에 따라 각자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하루를 돌아본 뒤 본분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그날 저녁 밥숟가락을 들지 않겠다는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적어도 국민소득 4만달러 실현 때까지.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