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상반기를 후끈 달궜던 사건 중의 하나가 촛불시위다. 미국의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대한 우려가 철 모르는 어린이들을 자극했던 시위다. 분명 시위 조장세력과 과격행동을 유인하는 무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는 전 국민 시위로 확산됐다. 수십만명이 모여 촛불을 밝혔을 때도 현 정권은 촛불을 끌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지 못했다. 대신 시위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세종로 한복판에 컨테이너 박스에 접착물을 발라 시위대의 진입을 막는 ‘명박산성’을 쌓는 것이 대응책이었다. 민심을 달래기보다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쪽을 택했다.
촛불시위를 단순한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로 본다면 본질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우려에 앞서 국민의 먹거리를 볼모로 굴욕 외교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국민을 참을 수 없게 했다.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거기에 울분까지 더해지면 막을 수 없는 국민 행동(?)이 된다. 아직도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이어 터진 것이 불교계의 반란이다. 참 웃기는 일이다. 21세기 선진을 향해 달리는 정권 중에 종교계와 맞장 뜨는 정권이 어디 있는가. 또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종교와의 대립각을 세운 정권이 어디 있는가. 종교와 국왕의 권위가 대립하는 중세도 아닌데, 해묵다 못해 형체도 없는 종교 갈등이 이땅에서 재현되고 있다. 종교차별에 서러운 스님들이 수십만명 모여 정권타도를 외치고 신성한 사찰입구에 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플랭카드가 살벌하기까지 하다. 만약 그들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다면 말 그대로 ‘종교전쟁’이다. 이 땅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무마책으로 내놓은 것이 공무원 복무규정에 종교차별 금지 조항을 못 박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또한 이 땅의 국민인데 헌법에 보장된 종교자유의 권리를 복무규정으로 못 박겠다는 처사가 가관이다. 규정이 아닌 인식으로 받아들여야 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명문화한 것이 ‘제발 저린’ 격이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민생도 챙겨야 하고 종교와의 갈등도 풀어야 하는 현 정권이 참으로 고달파 보인다.
그래도 촛불시위나 종교차별은 자존감과 차별의 서러움에 대한 발로다.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피해갔다. 문제는 숨어 있는 ‘생계형’ 분노의 폭발이다. ‘적어도 경제만은…’이라고 믿었던 CEO 대통령의 기대가 일순간 무너지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상대적 실망감을 더 크게 안겨주기 때문이다.
융합경제와 그린산업을 주장하는 현 정권이 IT·과학 정책에 달라진 모습이 없다면 신경제 부흥은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부처를 통폐합한 것은 부처운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만성적 고질병인 이공계 기피현상을 풀어나갈 대책은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안 띈다. IT업체들은 현재의 경영난을 IMF 때와 비교해 ‘더한 것 같다’고 말한다. 만나는 IT기업인들마다 끓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장려해도 시원찮을 판에 지원마저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각광받던 IT가 어느 순간 사양산업으로 전락했다.
누구나 경험 있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한 사람의 자연인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뿐, 대통령이라는 공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만을 최고로 여긴다면 그것은 독단이다. IT가 한국 산업을 위한 순교자도 아닌데, 정치논리에 묶여 배곯는 산업으로 전락하다면 그들의 ‘준동’을 ‘폭거’라 단정지을 거리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지금 비어 있는 시청앞 잔디광장의 새로운 주인(?)이 누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이경우부장@전자신문,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