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정신적인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인터넷 강국이라면서 인터넷으로 나쁜 짓 하는 데는 정말 창의적입니다. 왜 생산적인 부분에 힘을 안 쏟습니까. 이대로 가면 인터넷 망국이 될까 걱정입니다.”(박찬모 대통령 과학기술특별보좌관)
“컴퓨터도 오래 쓰면 재부팅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한국의 과학계도 재초기화(reinitialize)돼야 합니다. 지금 있는 것을 조금씩 고치려고 하면 언제가는 망합니다. 어느 시점에서 줄을 딱 긋고 목적을 정해 여기에 맞게 재초기화를 해야 합니다.”(서남표 KAIST 총장)
전자신문 창간 26주년을 앞둔 지난 11일 과학기술계의 원로이자 석학인 박찬모 특보와 서남표 총장의 대담에서 이런 충고가 연거푸 나왔다. 원래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 40분 동안 두 원로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미래를 걱정하는 얘기를 토해냈다. 이날 대담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열띤 공방을 기대했다. 박 특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과기정책을 대변하는 처지고 서 총장은 일선 과학교육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거친’ 싸움을 기대했지만, 싸움 대신 ‘걱정’이 더 많았다. 일부 주제의 토론에서 약간의 견해 차이를 보였을 뿐 두 원로는 우리 사회가 변해야 되고 특히 학교 현장에서의 리마인드를 한결같이 강조했다.
박 특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명박 대통령의 과기 브레인이다. 나이가 일흔 셋이다. 지난 7월 7일 대통령 과기특보로 임명된 박 특보는 취임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상근도 아니고 권한이 주어진 것도 아니지만 과기계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새 정부 출범 후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고 이후 출연연의 통폐합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박 특보의 등장은 사기가 떨어진 과학기술계의 큰 위안이었다.
그는 임명 이후 과기 관련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있다. 행사장에서 그의 모습은 ‘듣는 학생’의 자세다. 제주도에서도, 서울에서도, 대덕연구단지에서도 그는 잘 웃고 잘 듣는 학생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서 총장은 지난 2006년 러플린 전 총장 후임으로 KAIST의 총장을 맡아 교수 테뉴어제 도입, 생명연과의 통합, 나사와 2020년 달 탐사 공동 추진 등 많은 일을 했다. 대담이 열린 그날은 사흘간의 세계 연구중심대학 총장회의를 마친 다음날인데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서울과 대전을 하루가 멀다하고 오가며 KAIST를 MIT와 견줄 수 있는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의 나이도 일흔 둘이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과학기술에 몸 바친 보배 같은 존재다. 일찍이 미국에서 유학하며 자기 학문의 일가를 이뤘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어 노년의 편한 삶을 누릴 수 있었는데도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기꺼이 귀국길에 올랐다.
국민의 정신적 혁명이 필요하다며 안타까워하는 박찬모 특보와 KAIST에 재원이 부족해 더 좋은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아쉬워하는 서남표 총장.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온통 ‘과학기술계가 잘돼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찬모, 서남표는 열혈청년이었다.
홍승모 경제과학부장 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