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

 저는 지금 모스크바행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연방 방문 수행 기자단 자격으로 특별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는 몽골과 러시아 연방의 경계 지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발 아래 펼쳐지는 저곳에 실크로드가 있고, 블루오션의 상징이 됐던 몽골 유목민이 휩쓸고 지나가던 그 벌판이 있을 겁니다.

 비행 중 내내 ‘소련’을 생각해 봅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것은 1991년입니다. 그해 발트 3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러시아와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이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합의하면서부터 ‘소련’은 해체의 길을 걸었습니다.

 러시아 2대 대통령 푸틴의 지도력은 강했습니다. 그는 토지·조세·노동·연금 전 분야에 걸친 개혁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저축 고갈, 정부와 은행권에 대한 신뢰 붕괴 등 암울했던 러시아는 푸틴을 만나 살아났습니다. 빵을 사러 하루종일 줄을 서야 했던 러시아 시장경제는 신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과감했습니다. 외국인도 국경 등 특수지역을 제외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인정하도록 토지법을 바꿉니다. 2002년에는 법인 이익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4%로, 2004년에는 부가가치세를 20%에서 18%로 인하했습니다. 통합사회세 최고 세율을 35.6%에서 26%로 낮춰 기업 조세부담을 줄였습니다. 관세법을 개정해 통관절차를 10일에서 3일로 단축했습니다. 2002년에는 신노동자법을 만들어 고용주의 권한을 강화했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시켰습니다. 전기·철도·가스·통신 등 공익설비 부문 민영화를 단행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경제 개혁이었습니다. 사회주의를 부정하자 그는 모든 대통령이 꿈꾸는 ‘경제대통령’이 됐습니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러시아를 만들었습니다. 러시아는 연간 7% 이상 고속 경제성장 궤도에 올랐습니다.

 그런 푸틴이 지금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총리가 됐습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내무부와 비상사태부, 외무부, 국방부, 법무부 등을 관장하고, 푸틴 총리는 재무부, 경제개발부, 산업통상부, 에너지부, 통신언론부, 교육과학부 등 모든 부서를 직접 관장합니다. 푸틴은 아마도 ‘경제 총리’를 꿈꾸고 있는 듯합니다.

 푸틴은 자신이 만든 ‘2020 러시아 사회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IT, 항공, 방위산업, 조선 등 제조업을 육성해 산업다변화를 꾀하겠다는 전략입니다. 대형 국유기업 낙하산 인사 배제, 연금개혁, 관료주의와 부패 청산도 그의 몫입니다. 기업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현행 18%인 부가 세율을 다시 12%로 낮추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너무 흡사합니다.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꿈도 ‘경제대통령’입니다. 한국 경제의 오늘은 푸틴이 취임하던 러시아의 그때와 흡사합니다. 환율과 고유가, 반기업 정서로 선진국 문턱에서 10여년 넘게 헤매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에게 지난 대선 때 몰표를 몰아주었던 이유는 바로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의 주술적 집단행동이었습니다.

 지금 이 대통령은 러시아 세일즈 외교에 나섰습니다. 13개의 MOU 교환이 이번 순방의 성과가 될 것입니다.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번 출장은 여전히 빡빡합니다. 일본은 1박 3일이었고, 러시아는 2박 4일입니다. 돌아갈 때 가방이 묵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상룡기자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