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겠지만 인류 4대 발명품은 문자·종이·화약·나침반이다. 4대 발명품은 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문자는 문명의 전승과 발전을, 종이는 문명의 확산과 이전을 가져왔다. 화약은 ‘힘의 문명’을 탄생시켰고 나침반은 이를 세계화했다.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애써 만들어낸 4대 발명품도 20세기의 위대한 발명품에 비하면 초라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그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인류의 4대 문명에 빛의 속도를 더했다.
빛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고 만물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변한다는 정도는 안다. 컴퓨터와 인터넷 덕에 인류 문명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야기인즉슨 모든 것들이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포털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21세기 문명의 꽃이다. 포털은 모든 것을 빛의 속도로 빨아들이고 또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인슈타인도, 후대 현인도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물질이 어떻게 바뀔는지 정확히 구명해내지는 못했다. 알 수 있는 것은 방향성뿐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물질의 길이가 짧아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포털은? 개방과 공유, 참여의 확대일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상징이자 첨병인 포털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도 지금 포털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다. 아니 가장 먼저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계에서 포털의 힘이 가장 강성한 곳이 우리다. 뜨거운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최진실법’ 논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앞으로 우리가 겪어야 할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포털의 힘이 강해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많은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논란과 논쟁도 변화의 한 과정이요 우리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아쉬운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포털 규제 논쟁이 정치 쟁점으로 변질되면서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포털 규제 문제의 본질은 이중성에 있다. 포털은 인류 최고의 문명 플랫폼이자 그 운영자는 시장경쟁의 한 주체다. 개방·공유·참여·중립을 원칙으로 하는, 인류문명의 꽃으로서 포털은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 반면에 시장경쟁자로서의 포털은 규제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포털 운영자는 인터넷으로 창조되는 신세계의 지배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포털의 힘과 지배력은 참여자의 수에 달렸다. 더욱 많은 참여자를 모으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참여자의 질이나 해악은 가능한 한 방관하려한다. 이는 시장 경쟁자의 속성이다.
포털 규제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은 시장 경쟁자가 아닌 플랫폼에 자꾸 귀착되기 때문이다. 포털의 이중성 때문에 운영주체와 플랫폼을 구분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실명제, 사이버모욕죄 같은 것은 포털 운영자가 아닌 참여자를 규제한다. 모니터링제도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다.
포털도 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커진만큼 규제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편의적인 규제방식으로는 반발과 더 큰 부작용만 낳는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플랫폼과 참여자가 아닌 운영주체만을 규제할 방법을 찾는 데 모든 지혜와 힘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시장경쟁자가 친환경 경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도록 유도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