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러짜리 티셔츠, 30달러짜리 DVD 플레이어’는 오늘날 중국의 대표상품이다. 5000년 인류문명의 근원지로 부러워하기보다 싸구려 ‘메이드 인 차이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짝퉁’에, 성분조차 알 수 없는 식재료를 사용하지만 전 세계 사람은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이미 전 세계 생활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생활의 전면을 ‘중국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미 ‘중국 중독’이다. 중국 공장의 중단은 전 세계 경제의 사망선고와 같다.
파이낸셜타임스 중국 특파원인 알렉산드라 하니는 그의 저서 ‘차이나 프라이스’에서 중국 공장의 쉼 없는 생산력의 이면에 대해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값싼 중국산 뒤에 숨어 있는 노동인권 유린과 무차별한 정치적 탄압, 이기적인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에 거침없이 시위를 당겼다. 싼값을 요구한 대가는 수많은 영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멜라민 분유 파동, 유독성 화학물질이 든 감기약, 납 성분이 검출된 아기 장난감, 농약 만두, 지구 온난화 등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소비가 있기 때문에 생산이 이루어지듯, 이 모든 문제는 소비자 모두가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인류의 빅 히트상품인 값싼 ‘메이드 인 차이나’에 마음을 빼앗긴 소비자는 결국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극한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차이나 프라이스’의 현실이다.
고개를 돌려 국내 상황을 봐도 별반 차이가 없다. ‘IT 프라이스=저가’의 등식이 고착된 지는 이미 오래다. 많은 기업이 암보다 무서운 IT 프라이스병(病)에 쓰러졌지만 IT 프라이스는 여전히 난치로 존재하고 있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그것도 굴욕적 계약관계을 맺고 있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다. 보통 갑을관계에서 ‘을’은 권한이 별로 없지만 돈을 버는 처지고, ‘갑’은 큰소리치면서 돈을 쓰는 위치다. 하지만 IT업계만큼은 이러한 정상적인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고만고만한 업체들을 경쟁하게 하고, 그 와중에 죽을지 살지 모르게 치열히 싸우다 보니 생기는 것이 이 병이다.
오죽했으면 우스갯소리로 IT 서비스업을 ‘인신매매업’이라 했겠는가. ‘후려친’ 협력업체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다 보니, 볼멘소리가 나오고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이 나올 수 없다. 여기에 정부도 한몫한다. 최저가 입찰제는 뿌리깊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백약이 무효하다. IT 제품 제값 좀 받아 보자고 정부 입찰에 소프트웨어 분리발주를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분리발주 실적이 낮다는 국회의원들의 질타는 여전히 이어졌다.
‘차이나 프라이스’나 ‘IT 프라이스’나 그 이면은 같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만성 고질병인 ‘이공계 기피현상’의 증상은 더욱 깊어진다. IT 업종이 3D 업종으로 전락하고, 첨단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저부가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가 쉽지 않다. 아니, 산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그 결과 모든 과실은 덩치 큰 다국적 기업의 몫이 될 것이다. ‘명품’ 브랜드를 달기는 더욱 어렵다. 오프라인 대표 산업인 자동차와 건설은 기계 기술 측면에서 발전에 한계가 있다. 역시, 부가가치를 높인 명품으로 가기 위해서 IT가 필수다. 그러나 IT 프라이스가 존재하는 이상 이 또한 먼 나라 얘기다.
전 세계가 저가 중국산에 열광하듯 당장의 이익과 예산절감이 우선인 ‘갑’의 위치에서 저가의 유혹을 끊는 것은 쉽지 않다. 이면에 숨은 치명적 위험을 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IT 프라이스는 칼날에 묻은 꿀과 같다. 자칫,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IT 프라이스’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언제 올지 모른다.
이경우 국제부장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