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또 헐값 매각인가

[데스크라인] 또 헐값 매각인가

 10년 전 IMF의 아픈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분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 바닥을 모를 만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 국한됐던 10년 전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그때는 진원지가 아웃사이드였지만 지금은 중심이다. 그만큼 파장이 깊고 넓게 퍼질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선진국들이 파산에 빠진 주변국의 기업과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였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팔리는 신세다. 그땐 조달 시장 부족을 중국이라는 신천지로 대체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소비할 돈이 없어지고 있다.

 우리도 많이 달라졌다. 당시와 달리 외환보유고도 넉넉하다. 기업체질도 강해졌다. 부채비율은 지나칠 정도로 낮다. 대기업들은 현금 보따리가 넉넉한 편이다. 은행들도 그때처럼 지나칠 정도로 차입 자금에 기대지는 않는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화근을 부른 원인이다. 과욕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10년 전 그때, 우리는 지나친 욕심에 눈이 멀었다. 장기호황에 성장 지상주의에 빠졌다. 은행이나 기업이나 겁없이 돈을 빌렸다. 성장해서 갚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빌린 자금이 밀물처럼 회수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10년 후인 지금, 우리가 아닌 미국의 자본들이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저금리 장기호황에 눈에 멀었다. 고위험 투자로 큰 이익을 얻는 데에만 급급했다. 고위험 투자금이지만 부실해지리라고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섞어찌개로 포장까지 해가며 애써 외면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과욕이 화근이다.

 한가하게 금융위기의 원인이나 공통점, 차이점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10년 전과 지금, 주종이 뒤바뀌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정부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금융위기는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체력이 그때완 다르다.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는 실물경기 침체다. 지금은 우리의 건강상태가 아무리 양호해도 어려움을 피하기 어렵다. 상품을 팔 시장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돈이 없어 곤욕을 치렀지만 지금은 시장이 얼어붙어 애간장이 녹아날 판이다. 실물경기 위축에는 견뎌낼 장사가 없다. 상품을 팔지 못하면 기업은 어려워진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은행도 곤란해진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슬슬 매각 얘기가 다시 나온다. 은행들이 IMF 당시 빚 대신 받은 지분을 팔려는 것이다. 실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니 더 줄어들기 전에 비축해두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우일렉과 하이닉스 채권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IMF 때 헐값 매각으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반대급부로 이제는 제값을 받으려는 욕구도 강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은행들이 주인인 대우일렉과 하이닉스 매각은 그동안 수차례 공전을 거듭했다. 제값을 치를 마뜩한 주인공도 나서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러는 사이 세계 경제는 공황상태로 빠져들어버렸다. 지금 매각한다면 헐값을 피하기 어렵다. 경기 침체 우려와 금융위기 공포로 기업가치는 바닥에 떨어진 시점이다. 또 한번 과욕이 참사를 부를까 걱정된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주종이 뒤바뀐 지금 위기상황에서도 왜 우리는 헐값 매각을 걱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