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기사를 쓰면 욕먹기 십상이다. 댓글은 겁이 난다. ‘용팔이’니, ‘테팔이’니 하는 비아냥거림, 욕설, 전문적 비판 글까지 나온다. ‘판도라 상자’ 같다.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열자, 온갖 재앙과 질병이 나와 서둘러 닫았다는 그 상자. 서둘러 닫다 보니 함께 나와야 할 ‘희망’은 나오지 않았다던 그리스 신화의 그 상자 말이다. 용산과 테크노마트 이야기는 판도라 상자와 비슷하다.
용산이나 테크노마트를 칭찬하는 소리를 별로 듣지 못했다. 용산을 기사로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누리꾼 입방아에 올랐다. 소비자는 용산과 테크노마트에 물건 사러 갔다가 욕바가지를 쓰고 나왔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좋은 물건 구입한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낚였어요’ ‘안 당하는 법’ ‘바가지’ ‘사기’ 등의 단어가 기억의 대부분이다.
도쿄 아키하바라는 일본을 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구경 다니다 보면 지갑 속에 숨겨놓은 ‘지름신’이 나도 모르게 ‘강림’하던 곳. 지난 1일 그곳을 들렀다.
아키하바라에는 ‘아팔이’가 없다. 일곱 시간 뒤지는 동안 누구도 제품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세일한다’고 소리를 치는 하오리를 입은 젊은 판매사원은 있었지만 고객을 난처하게 하는 ‘아팔이’는 없었다. 쇼핑 선택권은 당연 고객의 몫이었다. 층마다 쇼핑을 안내하는 한국어 간판은 물론이고 한국어 방송까지 들을 수 있어서 친근했다. 전철 출구에도 친절하게 아키하바라를 안내하는 간판이 붙어 있다.
아키하바라에서 기자는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한 10m 정도 크기의 아소 다로 총리 얼굴이 들어간 현수막이었다. ‘초이 와로 오야지(불량스러운 중년 남성) 오레타치노 다로(우리들의 다로)’ ‘아이 러브 아키바(나는 아키하바라를 사랑한다)’라며 웃고 있었다. ‘나도 불량스러운(보통의) 중년남성이지만 아키하바라를 사랑한다. 우리들의 아소 다로’라는 뜻이었다.
현지 상인에게 뒷얘기를 캤다. 아소 일본 총리는 지난달 26일 아키하바라에서 취임 후 첫 번째 거리 연설을 했단다. 아소 총리는 지난 6월 아키하바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직접 그곳을 찾아 헌화하고, 지난달 26일 연설회를 가졌단다. 그는 해가 저문 아키하바라에서 2시간 남짓 일본의 고용문제, 중소기업 지원문제, 금융문제에 관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총재 선거 때도 아키하바라에서 연설한 골수 팬이었다. 당시 만화 명대사를 인용하고, 오타쿠 문화를 향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아이 러브 아키바(아키하바라)’의 시작이었다.
부러워졌다. 일본 총리의 선거 전략에서 ‘아키하바라’를 의식한 선거전략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아소 다로가 아키하바라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그랬다. IT산업 유통전략지인 동시에 일본 선거전략에 이용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아키하바라 한복판에서 생각에 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소 다로 총리처럼 용산 한복판에서 ‘아이러브 용산’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용산에서 경제위기 해법을 찾자’고 두 시간 동안 외칠 수 있을까. 세운상가부터 지금의 용산까지를 지켜본 우리 전자상가 세대는 ‘아직도’ 애정이 있다. ‘아이 러브 용산, 아이 러브 세운상가.’
김상룡 경제과학부 차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