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90년대 말 대한민국엔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하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였고 또 하나는 닷컴 붐이다. 닷컴 붐은 80년대 말 이후 뉴스서비스와 강력한 동호회(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무기로 전성기를 누리던 하이텔·천리안·유니텔·나우콤 등 VT(Video terminal)모드 기반의 PC통신시대를 저물게 했다. PC통신 업계는 뒤늦게 VT모드 기반을 인터넷기반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이미 승객을 실은 버스는 떠난 상태였다. 천리안·하이텔 등은 지난 10여년간 많은 변화를 거친 끝에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KTH 등을 통해 포털서비스로 선보이고 있지만 네이버(NHN)·구글·다음 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00년대 초 닷컴 거품이 꺼지긴 했지만 핵심세력인 포털들은 여전히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닷컴 열풍은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의 변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IBM·HP·MS 등 글로벌 기업이 e비즈니스(인터넷비즈니스)를 뜻하는 ‘e’를 쓰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모든 산업에 ‘e’ 입히기 작업이 시작됐다. 이른바 e전이(e트랜스포메이션)다. 개발·제조·유통·판매·서비스에 이르는 모든 비즈니스 과정에 IT를 접목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은 물론이고 불량률을 줄여 제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핵심이다. IT컨설팅업계에선 ‘전통 제조업은 IT를 수혈받아 비상한다’ ‘미래기술은 IT 토양에서 창조된다’ ‘IT화·정보화·e비즈니스화는 전통제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한다’는 말이 유행을 이룰 정도였다. 어찌됐건 e전이는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발돋움한 중국 등 개도국이 턱밑까지 쫓아온 상황에서 필연의 선택이었다.
지난해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전자거래진흥원이 2700여개 기업을 조사한 제조업 정보화 인덱스가 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46.1점이다. 낙제수준에 가깝다. 조사기업 수 등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산자부가 그 전에 조사한 통계에선 50.8점이었다. 그동안 정부가 업종별 B2B시범사업, 3만개 중소기업의 정보화 지원 사업, IT혁신네트워크지원사업 등을 통해 e전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세계적인 IT인프라를 갖고 있는 IT강국이라는 포장 속에 감춰진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괴리의 원인을 인식의 부족에서 찾는다. 말로는 e전이를 외치면서도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CEO가 몇몇 기업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10여년 전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얼어붙었고 한편으론 정부 주도의 저탄소 녹색성장(그린오션) 붐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부는 모든 산업에 그린을 입히는 ‘g전이(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작업에 착수했다. ‘e’와 ‘g’가 뜻하는 의미는 다르지만 기존 산업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측면에서는 일치한다. g전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환경과 지속가능 경영, 기후변화 및 에너지 등 그린오션 정책을 이끌어갈 강력한 권한과 리더십을 가진 책임 있는 조정자가 필요하다. ‘최고 환경정책 책임자(CGO)’가 필요한 이유다.
주문정 그린오션팀장 mj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