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정책의 기회비용

[데스크라인]정책의 기회비용

 요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란 용어를 곧잘 되뇌게 된다. 어떤 재화의 용도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평가액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환율과 화폐가치의 개념도 헷갈리는 나 같은 경제 문외한에겐 좀 어렵다. 시간당 1만원을 버는 사람이 그 일을 하는 대신에 2시간짜리 영화를 7000원 내고 봤다. 기회비용이 2만원인지, 2만7000원인지, 또 다른 변수를 넣어야 하는지 헷갈린다. 기회비용을 아깝게 여기면 좋지 않은 상황이며, 그렇지 않으면 좋다고 단순화하려 한다. 경제적 이익이든지 심리적 만족이든지 말이다. 주식시장에선 투자한 돈이 아까워 손절매도 하지 못하는 개미가 수두룩하다. 정부 정책과 자신의 운을 탓하면서도 ‘이 돈으로 다른 데나 쓸 걸’이라고 말하는 개미들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한 중소부품 업체 사장을 만났다. 그는 올해 ‘키코’로 인해 평가손실액이 크게 늘었지만 영업이익을 많이 내 감당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 던진다. “아, 원래 키코만 아니었으면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더 투자하려 했는데….” 그에게는 엉뚱하게 더 들어간 금융 비용보다 해외 경쟁사를 빨리 따라잡을 절호의 기회를 잃는 게 더 아깝다.

 국회가 요즘 수정예산안을 놓고 시끄럽다. 어김없이 올해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여야는 개성공단을 놓고도 대립한다. 여당은 ‘북한 퍼주기’라고, 야당은 ‘통일을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상반되게 해석한다. 여당 대표의 입에서 “개성공단이 없다고 경제에 무슨 악영향이냐”는 막말까지 나왔다. 정작 개성공단에 투자한 중소기업들은 북한에 퍼줄 생각도, 통일 기회비용을 치를 생각도 없다. 그저 중국보다 양질의 인력을 더 값싸게 구할 수 있어 투자했을 뿐이다. 애꿎은 입주기업들의 속만 시커멓게 탄다. 세상이 어찌 바뀔지라도 늘 그대로인 정치판을 보는 납세자로선 본전(세금) 생각이 간절하다. 불행히도 일부 고액 탈세자를 뺀 ‘투명지갑’들에게 기회비용이란 개념이 아예 성립조차 안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만간 은행 구제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아마도 부실채권 매입 등이 주요 대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은행이야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악성 부실채권부터 내놓지 않겠는가.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출이 절실한 상태인데 이 쌈짓돈을, 제 몸 살려고 우량 중소기업에도 대출을 끊는 은행부터 쏟아 붓겠다고 한다. 서민과 중소기업들은 속이 상한다. 은행이 이렇게 살아난다 해도 정작 서민과 중소기업이 죽으면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것인가. 정부가 부실채권 매입이라는 생명 연장의 링거를 꽂느니 직접 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특단의 조치가 더 낫겠다. 그래야 경제계에 막힌 돈줄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정부 정책의 기회비용부터 미리 철저히 따져봐야 하겠다. 설마 정부가 이런 것도 살피지 않고 정책을 펴지 않겠지….

 기회비용은 결국 선택과 포기의 문제다. 선택을 잘해야 하지만, 잘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과 기업도 그렇지만 나라살림을 하는 정책당국에는 더욱 그렇다. 요즘 같은 위기 국면에선 특히 정책의 선택과 포기를 정말 잘해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으며, 정책 당국이 지금처럼 욕을 얻어먹을 일도 없다.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