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국회를 정보화하면

[데스크라인]국회를 정보화하면

 국회가 연일 전쟁터다. 여당은 반대를 무릅쓰고 100여개의 쟁점 법안을 연내에 통과시키겠다는 태세다. 야당은 다수당의 횡포이자 폭거라며 물리적 항전에 나섰다. 물대포와 망치가 동원된 극렬한 전투가 있은 후 지금은 소강 상태지만 마치 폭풍 전야 같다. 일전을 앞두고 홍보와 회유로 심리전을 한창 펼치고 있다. 조만간 큰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전당이다. 우리 사회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봉합하는 곳이다. 그런 국회가 매번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틈만 나면 전투를 벌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근본 원인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기보다는 힘으로 관철시켜려는 정당과 의원들의 태도에 있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똑같은 쟁점이라도 여야라는 위치에 따라 정치적 견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여당일 때에는 밀어붙이던 것을 야당이 되면 막아내려 한다. 반대로 야당일 때에는 기를 쓰고 반대하다가도 여당만 되면 찬성으로 돌아선다. 여당은 밀어붙이기, 야당은 온몸 항거, 이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등식이 돼버렸다.

 근본 원인은 정당과 의원 전체의 자질 문제니 쉽게 고쳐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 총선 때 문제 있는 의원들을 낙마시키는 방법 외에는 마뜩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새로 뽑은 의원들조차도 언제나 매한가지였다는 게 우리의 쓰디쓴 경험이다.

 순진한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의사진행 방식을 좀 바꾸어 보는 게 어떨까. 더 구체적으로 정보화를 도입하면 어떨까. 물론 지금도 부분적으로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옛날처럼 투표함을 놓고 싸우는 일은 줄어들었다. 문제는 의사봉이다. 지금의 전투행위는 한결같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행위 자체를 막기 위함이다. 의사봉을 두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물리적 방해가 전투행위를 조장한다. 물리적 장소의 제한도 마찬가지다. 특정 장소에 정해진 의원들이 모여야만 의사진행이 가능하다. 그런 연후에야 의사봉을 두드릴 수 있다. 어차피 국회 안이지만 공간적 제약은 엄연히 따른다. 시간적 제약도 마찬가지다. 짧은 회기 안에 많은 것을 다루려 하니 자꾸만 유혹의 함정에 빠진다. 부실 심사가 그렇고 밀어붙이기가 그렇다. 이미 예결위를 필두로 상임위 활동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정보화 시스템은 없을까. 물리적 시간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시공간 제약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법안들을 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도 고려해 보자. 의원들 개개인의 견해를 최대한 반영하되 가능한 한 대화와 타협을 유도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 개개인이 당의 방침에 굳이 따르지 않아도 부담을 덜 주는 의사진행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국회 운영을 정보화하면 기계화돼 민주주의에 역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해다. 정보화란 사람으로 하여금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에 불과하다. 걱정대로라면 지금 많은 기업은 모두 기계처럼 돼 있거나 사라지고 없어야 한다. 기업들도 자신의 장래와 수많은 직원의 생존을 걸고 대화하고 타협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다.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쥐고 있는 국회를 기업에다 비유하다니 어처구니없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까. 지금처럼 틈만 나면 싸우는 국회라면 어차피 손해볼 것도 없지 않을까.

 유성호 부국장·생활산업부장 shyu@etnews.co.kr